황금비늘 (4부)
<해후>
새로운 세기가 열렸다며 지구촌은 연일 떠들썩거리고 있었다.
막 월드컵이 개최되는 시기여서 축구가 열리는 도시마다 사람들로 넘쳐났고
주된 이야기는 온통 축구 이야기뿐 이었다
서울역 대합실에는 낙수가 길호를 기다리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 때, 기차가 도착했는지 한 무더기 승객들이 쏱아져 나오자 낙수는 모가지를
길게 빼고 출구를 바라보았다
"아...길호야 ! 길호야 여기다"
오매불망 그리던 목소리가 꿈결엔듯 들려오자 길호는 소리가 난 쪽으로 눈길을 던졌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3년에서 2년이 더 흘러 5년만의 해후였다
"낙수형....."
"그래....어디보자 이놈아 훤훤장부가 다 됐구나. 5년 만이지?"
눈시울이 붉어진 길호가 가만히 끄덕이며 미소를 보이자 낙수는 그런 길호를 덥석 포옹 해줬다
"그래.....고생했다 고생했어.....머리까지 빡빡 밀었구나. 체격도 커졌고...."
"하하....형은 키만 좀 커졌을 뿐 여전히 똑같네"
"나야 뭐....스승님 따라서 전국 팔도를 유람이나 했으니......하하"
길호가 21살 이었고 낙수는 24살이었다
누가 보면 길호가 형이고 낙수가 동생인 줄 알만큼 길호의 덩치는 커져있었다
"자..어디로든 가서 밥부터 먹자 그동안 절밥만 먹느라고 고생 했을 텐데"
"밥도 먹고 술도 먹지 뭐..."
"술?"
"뭘 놀라고 그래. 나도 이젠 어른인데"
"아니 너......절에서 술도 배웠냐?"
"배웠지 우사형한테...."
"우사형?"
"그런 사람이 있어 아주 좋은 형이고 나랑 죽이 잘 맞았거든. 그래서 가끔 힘들 땐
날 데리고 저잣거라로 가서 국밥도 먹고 그랬거든"
'허어...."
낙수가 호흡을 길게 내뿜더니 길호의 어깨를 쳤다
"염불보단 잿밥이라더니..임마, 니가 꼭 그짝이다"
"먹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
길호가 게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오냐 알았다 신림동 국밥집으로 가자 할 이야기가 많을테니"
낙수가 모은 돈으로 신림시장 근처의 원룸을 얻은 두 사람은 길호의 옷을 사기 위해
작은 백화점의 아웃도어 매장을 찾았다
2층에 있는 남성복 매장에서 옷을 고르던 낙수가 길호의 어깨를 쳤다.
"형. 왜?"
"저 앞에 빨간모자를 눌러 쓴 놈 보이지?"
" 저기 저 사람?"
"그래, 소매치기다"
"소매치기? 어떻게 알았는데?"
"방금 지나가던 노신사의 어깨를 밀치고 부축하는 척 하면서 안창따기로 지갑을 후리는 걸 봤다"
"허...."
길호가 길게 숨을 뱉었다.
"저 놈 앞과 뒤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걷는 놈은 바람잽이고"
"저런 놈들은 조직이 있다고 우사형 한테 들었는데...상관말고 가자고"
"임마.절밥까지 먹은 놈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떻해"
"그럼 어쩌려고..."
"손 좀 봐줘야지"
"형을 만난 첫 날부터 주먹을 쓰기가 싫은데"
"하하 넌 구경이나 해도 된다"
길호의 옷을 서둘러서 사고 빨간 모자를 따라 백화점을 나온 낙수와 길호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빨간모자가 골목길로 접어들자 낙수가 그를 불렀다
"어이 형씨!"
빨간모자가 주춤거리며 뒤를 보았다
"날 불렀슈?"
"그려, 오늘 재미 좀 본 것 같은데...."
빨간모자가 방어자세를 취했다. 여차직 하면 튈 자세였다.
"뭔 소리여,. 재미라니?"
"내숭 떨거 없고. 니가 백화점에서 손장난 하는 걸 봤단 말이지"
빨간모자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손장난? 난 그런 거 몰라 잘못봤슈다"
"니 품 속에 니 얼굴과 다른 주민증이 들어있는 지갑 두 어개가 잇을거다. 순순히 내놓고
가면 용서해주고 개기면 비오는 날 먼지나듯 뚜둘겨 맞을거다 어떻게 할래?"
빨간모자가 적의에 찬 눈빛을 번들거리며 쇳소리를 냈다
" 이 세키가 뒤질라고. 넌 누구여?"
" 난 아무것도 아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여. 긍게 얼릉 지갑이나 내놓고 꺼져"
"얼씨구. 이 쉬키 뒈질라고 용쓰네"
"그래 나 뒤질려고 용쓰는 놈이니까 골목 끝에 숨어있는 니 넘 동료도 나오라고 하고"
길호는 낙담한 표정이었지만 자신을 믿고 낙수가 저렇게 나오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 때 골목 끝에서 두 놈이 아슬렁거리며 나왔다
"어이 형씨, 형씨도 쓰리꾼이셔?"
가죽잠바를 입은 떡대가 낙수를 보며 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한 놈은 청 재킷을 입었는데 이 상황이 재밋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칼 자국이 있는 놈이었다
"난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랑게. 잔말말고 지갑이나 내놓고 꺼지라고"
그 때, 빨간모자가 앞발차기로 낙수를 공격하자 낙수는 가볍게 피하고 시크하게 말했다
"두 번째 경고는 안 한다. 지갑 내놓고 꺼지지 않으면 니덜 오늘 좀 맞아야 쓰겠다"
"쥐럴 하고 있네"
빨간모자가 말하면서 연속해서 발차기로 낙수를 가격했지만 오히려 낙수의 가위차기에
빨간모자가 호흡이 끊어지는 신음을 뱉으며 길게 뻗어버렸다.
그러자 청재킷이 칼자국이 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녀석의 두 주먹은 어느새 징이 박힌 장갑을 쓰고 있었다
청재킷이 복싱 폼을 잡으며 낙수의 얼굴을 가격하려고 접근했지만 낙수는 거리를 줄 듯 말 듯 하며
청재켓의 주먹을 여유있게 피했다
"그냥 지나갈 것이지 어디 이것도 피해보......"
청재킷이 주먹을 날리는 척 하며 발길질을 하자 낙수가 왼편의 담을 찍고 그대로 청재켓의
안면을 강타했다.
청재켓은 빨간 모자처럼 끊어지는 호흡을 내더니 그대로 길게 누워 버렸다.
그러자 가죽잠바가 뒷 주머니 에서 뭔가를 꺼내들더니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날 선 칼날이
튀어 나왔다. 재크 나이프였다.
"새퀴가......뭔가 배웠나 본데 어디 니 배때지는 칼이 안 들어가나 보자"
가죽잠바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재크 나이프를 휘두르자 낙수가 실소를 지었다
"장난감 안 집어 넣으면 너 진짜 뒤진다"
"얼씨구. 미췬 놈들 아녀? 어디 한 번 해볼까?"
잠바가 재크 나이프를 마구 휘두르며 낙수를 압박했다.
낙수가 막 수를 쓰려는 데.....
그때까지 구경만 하던 길호가 그 자리서 튀어 오르며 공중제비를 돌더니
잠바의 두 다리를 가볍게 찍고는 뒤돌아서 목울대를 쥐고는 힘을 주자 잠바는 입에
거품을 물고 부들부들 떨어댔다.
낙수가 다가와서 잠바의 손에 들린 나이프를 발길질로 쳐냈다.
"아이고오.....형님들.....몰라뵀습니다 살려줍시오"
빨간모자와 청재킷도 정신이 들었는지 달려와 꿇어 엎드렸다.
"쯧쯧쯧. 애들은 꼭 매를 벌어요. 맞아야 정신이 든단 말야"
"한번ㅁ만 봐주시오 형님들. 오죽 먹고 살기가 어려우면...."
"시끄럽다. 꼬추 달리고 사지육신 멀쩡한 넘들이 할 게 없어서 남 주머니를 쌔비냐?"
길호가 그런 낙수를 보자 우스웠던지 돌아서서 헛기침을 토해냈다.
"니덜, 어디 소속이냐?"
"네. 저희는 은곰파 소속인데요....."
"은곰파? 그러면 금곰파도 있겠네?"
"어? 금곰파도 잇는데요..."
길호가 웃음을 참느라고 배에 힘을 주었다.
"모름지기 사내 대장부는 사기를 칠지언정 더러운 손장난은 안 하는거다 대갈통 속에 밑줄
쫙 치고 새겨들어라"
"어이고 형님. 새겨 듣고 있습니다요"
낙수가 재크 나이프를 꺼내든 잠바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재크 나이프, 넌 손가락 하나쯤 부러뜨려야 쓰겠다"
"아이고오.....형님 제발.....한 번만 봐주시면 개과천선 할게요"
잠바가 죽을 상을 지으며 두 손을 열심히 비벼대고 있었다
"우리가 떠나면 네 놈들은 또다시 손장난질 할거란 거 다 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즉시 손 털고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제에바알....."
길호는 단전에 힘을 주며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댔다.
"니덜, 작두파란 이름은 들어는 봤겠지?"
'넷? 작두파요? 아이고오..그럼.....형님이 작두파인가요?"
"그렇다 쉬키들아 그리고 이 몸이 작두파 부두목님 이시다"
그러자 세 놈은 서로의 얼굴을 한번씩 쳐다보더니 똥색이 되었다
"어이고...몰라 뵈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를....."
"그렴 니덜을 용서하믄 약속대로 고향에 내려갈거냐?"
"네네...가고 말고요 당장 가겟습니다"
잠바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빠르게 말했다
"야. 빨간모자. 네 놈은 왜 아직도 지갑 안 내놓냐?"
그러자 빨간모자가 재빨리 품을 뒤지더니 지갑 두 개를 내놓았다
길호의 얼굴은 웃음을 참지 못해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얼굴이었다.
낙수가 지갑을 뒤적거리더니 현금 삼십만원을 꺼내 잠바 앞으로 던졌다
"두 당 십만원씩이다 그거면 쐬주라도 한 잔씩 빨고 고향 갈 차비는 될거다. 부족하냐?"
"어이고오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형님"
"니덜, 앞으로 내 눈에 또 띄면 그땐 손모가지를 두 개씩 분질러 놓겟다 알아듣냐?"
낙수와 헤어지기 전에 들렀던 주막에 자리집은 둘은 막걸리와 해물파전을 시켰다
"낙수형.....웃겨서 디지는 줄 알았네.크크큿...."
그제서야 원없이 참던 웃음을 터트린 길호는 새삼스런 눈으로 낙수를 보며 말했다
"근데 형, 어떻게 된거야. 형이 쓴 무술은 불무도인데?"
"알고보니 낚시 스승님이 불무도 고수였더라"
'이잉? 정말?"
낙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스승님은 첨에 문무암에서 불무도를 배우고 하산 해서는 낚시에 빠져든게지"
"그랫구나..."
"스승님께 낚시도 배우는 한편. 불무도도 배워가며 전국을 유랑하며 잘 지냈지 하하"
"난 그것도 모르고......형이 나만 믿고 까부는 줄 알앗지 뭐야"
"임마. 내가 동생인 너를 지켜줘야지 명색이 형인데...."
"근데 진짜 작두파 부두목?"
"내가 그런 조직을 들어갈 일 있냐 풍문에 들은 걸 주워 넘긴거지 "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주막집에선 여전히 정태춘의 여운이 길게 남는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두 사람은 그 날 밤이 새도록 막걸리를 들이키며 지난 5년을 이야기 한다고 신이 나서 술잔을
비워내고 있었다.
다시 찾아온 서울의 밤은 점점 깊어가며 자동차 소리가 죽어가고 있었다
네온싸인에 지친 마네킹들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한 곳을 응시하며 서울의 빔을 기억하려 애썼다
길호가 신이 나서 궁상각치우 사형들에게 배운 불무도 이야기와 친형처럼 따르던 우사형과
원두막에서 과일 서리를 한 이야기며 막갈리를 먹고 모자라서 싸들고 와서 문무암 밑에서 몰래 먹다가
사형들에게 들켜서 호된 기합을 받은 이야기를 할 때, 낙수는 그런 길호를 흐믓하게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경청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5년만의 해후를 축하라도 하는 것일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벽에 붙여진 스피커에선 정태춘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 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 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강남 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4부 끝...
5부를 기대하여 주세요 !!
황금비늘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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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9
금지어 땜시...
스트레스가....흠냐 =_=;
5부 기다려집니다 ᆞ
많이 수고하셨어요~~~
지달리다가 망부석 될뻔~~~!
ㅎㅎ
힘 좀 쓰고 싶어도 연식이 되선지....
좀 부실하네요 요즘은^^;;
여하튼 힘내보도록 하죠 댓글 감사합니다
늘 읽어주시고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원 좀 많아ㅣ 해주셔야 힘을 내지요 ㅎㅎ
저도 늘 좋은 생각만 하며 살겟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목 빠지셔도 저는 책임 없습돠 ㅎ...
기다림이란 늘 좋은 것이죠?
월척을 기다리는 그 기다림과 경건함이란.....ㅎ
늘 그런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면 실망 안 시킬게요
감사합니다 !!
잘 보고있어요ㅎ
단숨에 읽고나니 아쉬움이 커집니다
그래도 기다림이란 즐거움도 있기에
기꺼이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청컨데 힘드시더라도
목빼고 기다리시는
독자들 생각하시어 힘내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밤되세요.
잘 잃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에야 올라왔군요. 목빠지겠어요...ㅎ ㅎ
재미있게 읽고 있읍니다. 응원 드립니다.
깊이깊이 아주깊이 빠져드네여~~~~~~~~~~~33
기다리는 시간도 참좋네요
제발.....길게 부탁합니다
장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