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지방선거가 끝났으니 얼추 되돌아 보니 20년전인 1994년 4월의 일입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치뤄진 4월 초순,
야반도주하는 빚쟁이 마냥 동이 트기도 전에 바리바리 싼 짐과 낚시가방을 메고 설레는 마음으로 춘천으로 향했습니다.
짧은 대에 전해지는 향어의 당차고 짜릿한 손맛과 더불어 전리품으로 이슬이와 함께 입을 즐겁게 하는 자연산 향어회...
그 당시엔 댐낚시에 빠져 시간이 나면 충주호나 소양호로 향어 장박낚시를 하곤 했습니다.
낚시도 좋지만 한적하고 고요한 호수에 낚시대를 드리고 있으면 내가 한폭의 동양화 속 주인공인 강태공이 된듯한 착각도 좋았고,
무공해 밤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무수한 별들을 보노라면 감성이 풍부한 소년이 된듯 해서 좋았습니다.
춘천 단골낚시가게에서 운영하는 낚시배를 타고 가는데 출조하는 꾼이라곤 나 외에 1명의 낚시꾼...
낚시터로 가는 동안 그분과 의기투합하여 낚시라는 공통분모로 "언제 누구는 빨래판 만한 향어를 잡았네"
"3호줄은 여러번 터트려 4호줄만 쓰네"라며 낚시꾼의 전매특허이자 감초인 약간의 뻥 섞인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듯 목적지인 소양호의 작은 산막골이 눈에 들어옵니다.
봄이라곤 하지만 그해 4월 초순은 이상기온으로 날씨가 꽤나 쌀쌀했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람은 왜 그리 부는지...
짧은 대 대신 2.5칸과 3.0칸 두대를 편성하고 수능시험이 코앞에 닥친 수험생 부모의 마음으로 밑밥을 지극정성으로 투여했습니다.
3박4일 여정이라 짐을 풀고 텐트를 치는데 바람은 점점 더 거세게 불어댔습니다.
본격적으로 낚시를 하기위해 낚시대를 들고 앞치기를 시도하는데 맞바람이 워낙 거세서
낚시 초짜 마냥 포인트에 떡밥을 넣기 조차 힘들었습니다.
잔뜩 찌뿌린 날씨에 변덕 죽 끓듯하는 뺑덕어멈처럼 사방에서 불어대는 광기어린 바람이 급기야는
받침대에 올려놓은 낚시대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기 바쁩니다.
입질도 없었지만 천방지축 날뛰는 망아지같은 광풍때문에 낚시대를 접고 이른 저녁을 먹곤 텐트에서 잠을 청하는데...
이번에는 추위가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침낭속에 몸을 집어넣고 지퍼를 닫았지만 여름용이라 그런지 황소바람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와
오뉴월 개 몸 떨듯하다가 "이러다간 얼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텐트안에 버너를 피우니 한결 나아졌습니다.
텐트안에서 버너불을 켜 놓고 자다가 저산소증으로 사망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텐트문을 조금 열어놓고 자는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명이 희뿌옇게 찾아옵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텐트밖에 놓아 두었던 생수가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따끈한 커피로 몸을 녹이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상기온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강원도 하고도 두메산골...
수면이 발 아래 있지만 해발로 따지면 500m 이상은 되리라 생각해 보니 이렇게 추운 것도 이유가 다 있었던 겁니다.
라면을 끓여먹고 심기일전해서 낚시꾼의 사명이요 의무인 낚시질을 하기 시작하는데
어제부터 불던 바람이 잘 생각은 커녕 철전지 원쑤처럼 매섭게 불어댑니다.
돼지표 본드로 붙인 듯 꼼짝도 하지 않는 말뚝찌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막의 신기루처럼 전방의 양어장 가두리가 점점 나에게 다가오는 겁니다.
"추위와 강풍에 빡세게 시달리다 보니 이제 슬슬 맛이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에 잠겨있는데
"빨리 낚시대 거두세유~~" 낚시배에서 만나 옆에서 낚시를 같이 하던 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두리가 쓰나미처럼 내앞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 해 낚시는 따뜻했네(?)...(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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