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와이프가 낚시를 왜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외로운 내게 젖을 주는 거야. 머리를 안아주고, 엉덩이를 다독여 주는 거야.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 무릎 꿇지 않으려 이 악무는 내게 잠깐의 휴식을 주는 거야. 살아낸다고 고생한다며 하룻밤 짧은 안식을 주는 거지." 낚시한 지 30년이 넘은 듯합니다. 오로지 독조만 합니다. 물가에서의 하룻밤이 지루할까 봐 군데군데 '그녀들'과의 추억을 끼워 넣습니다. 픽션인지 넌픽션인지는 상상에 맡기고, 표현수위야 뭐 용인될듯하지만, 군자님들께서 나서신다면 다음부터는 빼겠습니다.
18:30
동해가 보이는 소류지. 독조.
둥지처럼 손바닥을 모아본다. 미니방울 캐미 7개가 메추리 알처럼 옹기종기하다. 꿀밤 몇 방에 놈들이 하나씩 파랗게 부화한다. 진화한 놈들은 이제 등대가 될 것이다. 밤새 나를 지켜줄 것이다. 고양이의 은밀함으로 나를 지켜볼 것이다.
바람이 변덕을 부린다. 한 번 때렸으면 그만이지 가던 길 돌아와 또 뺨을 때린다. 캐미 불빛이 물결 따라 찰랑댄다. 미끼를 끼워달라는 바늘의 보챔인 듯하다. 몇 번을 때려도 무덤덤한 반응에 바람은 싫증이 날 것이다. 곧 물결이 잘 것이다. 산들은 잠을 자기 위해 공룡처럼 엎드리고, 나무들 또한 부산함을 멈출 것이다. 담배를 물고 커피를 마시며 자박자박 어둠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19:00
옥수수를 바늘에 끼우며 문득 그날, 그녀를 떠올린다.
- 난 여자가 좋아.
- 새삼스럽게, 알아. 자기 여자 무지 밝히는 거.
- 아니, 농담 아니고, 난 여자가 말랑말랑해서 좋아. 애기 엉덩이처럼 부드럽거든...
- 남자는 싫어?
- 어, 싫어. 나도 남자지만, 단순한데다 무식하기까지. 게다가 폭력은 덤으로.
- 난 섹스는 폭력적인 게 좋아. 아! 거기거기 아프게 꽉 깨물어 줘!
말랑말랑한 옥수수 한 알이, 얼치기 좌익이었지만 섹스만큼은 프로였던 A를 잠깐 불러왔다. 1년 정도 만난 것 같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조금 미안해진다.
바람이 자고 물결도 잔다. 다림질한 듯 잔잔한 수면에 북두칠성 같은 캐미 7개. 앞치마 속에 난로 불빛을 감추며 왼손을 뻗어 뜰채를 잡아본다. 놈은 반드시 다시 온다...
20:00
동해가 보이는 소류지. 가까이 4차선 도로가 있고 진입이 쉬운 아담한 계곡지. 밤새 찌가 말뚝일 경우 허다하다. 소위 터가 세다는 게 찾는 이가 드문 이유인 듯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터가 세다라는 말은 '경계심이 높다'라는 말과 동의어이고 '괴물이 있다'라는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런 곳에서의 밤낚시는 소리와 빛을 최소화해야 한다. 숱한 경험이 그렇고, 낚시 정석 또한 그러하다.
작년 이맘때의 하룻밤은 소박맞은 새색시처럼 지나갔다. 무너미를 지날 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첫날밤 어땠수?" 처음 온 사람이란 걸 안다는 건 토박이라는 말이다. 밤새 캐미불빛만 없었다면 혼자라고 착각할 만큼 그는 어둠 속에 있었다. "버림받았습니다." 그가 표정으로만 웃었다. "몇 번 더 버림받아야 님이 만져 줄 거요." 의미심장한 눈빛과 말투. "대단한 님인가 봅니다." 그래, 위풍당당 흑금색 갑옷에 전율을 느낄 만큼 멋진 놈들을 만난 적이 몇 번 있었지. "없는 듯 낚시하시는 게 맘에 들었수. 몇 번 더 오쇼. 이십 년이 넘게 마르지 않은 곳이오. 지하수가 샘 솟거든. 귀신 같은 놈이 있소. 낚싯대 몇 개 해먹을 각오하시고..." 장비를 닮은 그가 고개를 돌렸다. 공명을 몰라보는 장비가 아침 햇살 아래 장팔사모를 휘두르고 있었다.
2.1칸 1번대, 오솔길에 바짝 붙인 캐미가 꼬물댄다. (수심 80CM. 밤나무 굵은 가지가 초릿대처럼 수면에 닿아 한낮에도 응달진 곳. 바닥엔 낙엽이 쌓여 일반적인 바닥 채비로는 미끼 함몰을 극복할 수 없음. 유동홀더 2개. 윗 홀더는 바닥에서 찌톱 길이만큼 띄워서 고정. 밑 홀더는 관통. 유동간격은 윗 홀더 밑에서 찌톱 길이의 반. 맨 밑엔 롤링도래. 도래 침력은 찌톱 부력과 일치.) 앞치마 속에서 오른손을 빼고 손잡이 위에 달팽이의 더듬이 마냥 검지를 올린다. 온몸의 신경을 더듬이 끝에 집중한다.
- 가만, 이대로 잠깐만...
모텔 로미오 305호 문을 닫고 그녀를 가슴에 안았다. 무슨 말인가 할 듯하던 그녀가 잠잠해 졌다. 아마 그녀도 가슴에서 가슴으로 건너오는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 자기도 이런 느낌이야?
- 니가 느낀 게 뭔데?
- 하나가 된 듯한 느낌.
- 아마도.
- 오르가즘 만큼 황홀했어.
- 더듬이가 예민하면 오르가즘 보다 더 황홀하다는 걸 느끼게 돼.
- 딴 여자에게도 이렇게 해?
- 아, 이 여자 유치찬란하네. 습관이야 습관. 촉수가 발달하면 느낌에 탐닉하게 돼. 삽입보다 좋은 게 있다는 걸 알게 돼.
-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아.
- 그만. 잡담은 그만하고 수업 시작하자. 최대한 천천히 옷을 벗는다. 실시!
서울에서 울산으로 2년 교환근무를 온 B는 내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몇 년을 일만 하고 살았더니 여자를 잃은 것 같은데, 자기는 분실한 듯한 여성성을 찾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게 요지였다. 꽤 심각하고 진지한 듯 상의하길래 썩 내키지는 않지만 노력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솔직하게, 많이 굶었다, 하고 싶어 미치겠다고 말했다면 더 좋았을 B와의 첫 수업이었다. 열일곱 번째 수업에 그녀는 자기의 온몸이 성감대라는 걸 발견하게 되었고, 드디어 손가락을 혀로 애무해주면 오르가즘에 달하는 경지에 올랐다. B는 남은 일 년 동안 총각 선생 몇 명을 접수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녀는 내 덕분에 달팽이의 더듬이를 가지게 되었기에 이름이 가물가물하지만 별로 미안하진 않다.
손잡이에서 더듬이로 미세한 느낌이 전해온다. 툭, 건들다 오물대는 느낌. 말랑한 옥수수 한 알을 추파춥스처럼 빨고 있는가. 찌가 천천히 한 마디 상승하다 잠깐 정지한다. 호흡을 멈추고 이게 정점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소통이 토끼처럼 허무할 리 없다. 두꺼비처럼 질기고 사마귀처럼 극적으로 가자. 싸움을 걸어다오. 나는 준비가 끝났다.
지루한 이야기, 잠깐 쉽니다.
독고다이
-
- Hit : 9094
- 본문+댓글추천 : 3
- 댓글 8
늘 감사한 마음 전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면을 통해 감사 인사 드림니다.
모쪼록 늘 건강 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건승 하시기를
기원드림니다.
아~장터계시판에 나눔이벤트를 진행중에 있으니 들리셔서
자리도 빛내주시고 행운도 받아가세요.
재밋는글 잘 읽고 갑니다.
나중에 저도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낚시를 하고나면 왠지 모르게 아랫도리 힘이 들어가던데 ...
다른님들도 그러신지ㅋㅋ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대할께요
편한밤 되세요
2부 기대하겠습니다..
열흘이상 지났는데 후속편 안올라와 목 빠집니다.
이건 언어의 마술입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