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도쯤 충주땜은 전지역에서 거의 모두가
대박났었다
밤에 땜에 올라서면 그 넓은 지역이
구비구비 야간캐미불로 띄를 이었다
85~6년정도 늦은봄에 목벌초입으로 밤낚시를 갔었다
수위는 매우 낮아있었다
여기저기 맨땅이 드러나있었고
낚시하는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루밤사이에 수위가 30~40cm씩
빠지는게 이유였을것이다
당시애도 가끔은 카바이트간드레를
사용하는분이 계셨었는데
내가앉은 맞은편에 있던분이 간드레를
켜놓고있었다
불빛이 거슬렸지만 워낙 남에게 싫은소리를
못하는편이라서 붛편을 감수하고
낚시를햤었다
그런데 이분이 언재 부터인가 이따금씩
"어 ~크다 .마누라 고무신만하다"를
연발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철퍽되는 물소리도났다
조용한밤에 이런행동을하니 주변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게 당연했을것이다
드디어 날이새고
철수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것없이
그사람을 거쳐갔다
밤새 조과를 확인하기위해서다
과연 몇수나 했을까?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빛나가고~~
그분은 완전"꽝"이았다
어떤분은 왜이리 사람이 싱겁냐고 핀잔을주기도했다
그래도 그분은 웃기만했다
얼마나 입질이 없었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햤다
그날밤은 그분이 잠시나마지만
얼마나 부러웠던지~~ ㅎㅎ
지금 그뷴은 어디에 계실까?
아마 월척화원이되어서 이글을
읽고있지는 않을까?
만약 당시의 장본인이라면 자수하셔서
왜그랬는지
밝히시기 바랍니다
조행기란이 너무 조용해서
올려봅니다
회원님들도 많이 올려주세요
즐낚들 하십시오~
저도 그때쯤 안동땜을 휘젓고 다니던 때가 생각나네요 ....
눈에서 레이져를 뿜었었는데...
지금 낚시동무처럼 싱거운분이 워낙에 조용하니
장난을 좀 치셨구만요.ㅋ
잡았더라도 그닥 크지 않았을 듯 하네요^^
지금도 거의 매주 충주댐으로 출조 하지만
지금과는 많이 다른 낚시였죠
말씀 하신 신발짝 붕어들이 주종 이었구요
왜 그러셨을까요?
모두 몰황이고 자신도 입질이 없으니 심심도 하고 해서
가볍게 장난친거 아닐까요?
오짜좀 보자님!^^
오짜를 마음에 두셨으니 신발짝 쯤이야....하시지만
그시절 충주호는 8치 9치가 주종 이었습니다
문득 궁금 해집니다
충주로 내려가는 국도변 회물차 낚시방들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수입 어종이라 한국의 민물에 장기적으로 적응하기가 어려워 자연 도태?
긴장감과..희망..배아픔..
두루두루 나눠준 분이시네요..ㅋㅋㅋ
향어는 인위적으로 계량한 어종이라 자연에서 번식하기 힘들다네요. 잉어랑 교배되어 잉향어가 되면 번식능력이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