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을 위해 1일 1회로 게시물 건수를 제한합니다.

아버지.아버지...

내 나이 

지금 62년생이니 50년이 훨씬넘은

이야깁니다

당시 어버지는 옥천의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신 전형적인 농삿군이셨지요.

나는 국민학교를 입학하기 전~

아마 6살쯤 되었을겁니다

봄에 모내기를하려면 그때는 나무로만든

써래라고 하던가요? 

이기구를 소 목에걸고 논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논흙을 고르게 했었습니다

하루는 

일을마치고오신 아버지가  나보고

낚시를가자고 하시더군요

뒷산이 대나무 밭이었는데 댜나무를 자르고

실을 묶고 추도없이 바늘을 메고 낚시를

했습니다

미끼는 어떤날은 밥알을달기도했고

어떤날은 말가루에 기름을섞어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  낚시줄과 바늘을 어디서 구하셨는지도

지금 생각해보니 궁굼하네요

하여튼

마을앞 조그마한 연못에는 붕어들이 많았었나봅니다

가기만하면 새끼줄로 만든 통애 붕어들이

그득했으니까요

특이한것은 좀 큰것은 살려주고 손가락먼헌것만 가자고옵니다

그것을 어머나께서 양념을허고 물끼하나없이

바싹 볶아내면 얼마나 맜있었던지요

냄비바닥에 살짝 탄듯한 양념들은 정말

맛이 기가막혔습니다

변변한 찌도없이 갈대를 중간에 묶어서

하던 그때 그낚시가

몹시도 그립네요

6월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달이기도해서

그리움이 더합니다

그때하던 낚시를 지금껏하고았으니

참 오래도하네요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서 몇자

적어봤습나다

우라 회원님들도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이 있으시겠지요

추억들 많이 만드시고 어려운 시기이지만

모두가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제 부친께서는
파리 낚시 달인 이셨지요.
한 번 나가시면
백단위 마릿 수를 들고 오시곤 했었죠.
밀가루 반죽 입혀서 튀김을 해놓으면
어릴 때라 가시 때문에 먹지 못하고
튀김 옷만 벗겨 먹고
정작 피라미는 따라 댕기는 땡칠이 몫 이었다는.....

그 때가 그리워 지네요.
아버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록 그리운 이름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8년전 체장암으로 돌아가시기전 병원에 입원해 계시면서
퇴원하면 제가 드린 낚시대로 낚시나 하며 그렇게 유유자적하며 지내실거라 하셨는데
그렇게 해보지도 못하고 떠나시고 말았네요.
땟장수초님 글이 잠시 잊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네요.
어릴적 아버지 손 잡고 따라 다니며 마냥 좋았던 기억이.....
저도 비록 장성한 아이들이지만 지금이라도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우리님들!!
항상 안출하시고 어복충만 하시길 기원 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한동안 밤낚시할 때
뒤에 아버지께서 서 계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답니다.
아 나는 낚시 갔다오다가 들키면 지게 작데기 세례를 받았는데~~~ㅠㅠ

단 은어를 잡아 오면 뭐라 안카시고 초장에 꾹~~~하시던 아부지 그,립네요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은..
발정나서 우리를 탈출한 돼지를 쫒아서,
온동네를 뛰어다니던..-_-;;
..
낚시는 부모님 몰래 가는거였죠..ㅋㅋ
바닷가라서..십원주고 산 낚시줄 두발에,
낚시방 아저씨가 묶어주신 바늘 하나.
봉돌대신 보말껍데기 묶고서 놀래기 잡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저도 가끔 낚시하면 아버지 생각 나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쯤 긴 대나무 노끈 으로 줄을
매고 낚시바늘도 컷던거 같아요
밤에 낚시 갈거니까 앞 논 또랑에 가서 애기 붕어좀
잡오라고 하셔서 대바구니 가지구 가서 한바구니
뜨니 붕어 가 제범 잡혀 집에 가져가니 금방 잡았네
하시며 아침에 고기 구경 해라 하시며 낚시가시구
아침에 샘가에 가면 큰메기 잉어 믾이 봤었는데
그땐 생업으로 하셨던거 같아요
저도 아버지 보고 프네요~~~^^
제가 7살도 전에 아빠를 따라다녔으니...거의25년을동출을 했었는데...
폐암으로 10년전 머나먼 출조를 떠나셨죠.
그 때 더좋은 낚시대를 못 사드린거와 평소 따뜻한 말한마디 못 해드린것과...
마지막으로 아빠 "존경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평생동안 한번을 못 한걸 죽을때까지 후회할 듯 합니다.
그 땐 몰라는데 나이먹고 지나서 보니 그 때가 너무 그립고 너무 후회됩니다...
많이 보고싶네요...
우리 아빠......



2024 Mobile Wolch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