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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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못의 비가(悲歌)

(나광) 030_essay10255217.jpg 형님은 한줌 억새풀의 흔들림이 되어 살아생전에 즐겨 찾던 낚시터 옆 언덕빼기에 싸늘한 가을 바람으로 잠들어 있었다. 강산이 변해도 네 번은 더 변했을 세월을 풍우(風雨)에 희미해진 흔적(痕跡)으로 기억 지으며... 그리고 낚싯대 같이 담그던 까까머리 소년은 이제 반백(半白)의 장년(長年)이 되어 형님을 먼저 보내고 난 사십 여 년의 유한(有恨)했던 세월을 낚싯줄에 묶어 그 추억의 한가운데로 찌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내게 고종사촌(姑從四寸)뻘 된 그 형님을 내가 아직도 가슴속의 따뜻한 온기(溫氣)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미약하지만 낚시에 대한 최초의 이론(理論)과 평생을 두고 가슴에 심지 돋우어야 할 문학(文學)에의 첫 꿈을 심어준 인연(因緣)에 대한 연민(憐愍) 때문인 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인간이 얼마만큼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을 할 수 있는가를 그 형님과 그 형님을 사랑했던 한 여인의 순애보(殉愛譜)를 통해서 배웠기 때문이리라! 지금의 사랑 세태(世態)에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찌가 솟는다. 찌 솟음의 길이는 붕어의 호흡(呼吸)만큼 이어지고, 그 호흡의 길이 만큼 내 긴장도 길어진다. 더구나 수심 재서 찌 맞추고 달디단 담배 한 모금과 함께 받은 첫 입질은 모든 꾼 들에게 순간 세상의 갖은 시름을 잊게 만든다. 오직 솟는 찌 끝에 모아지는 기대와 설레임만 파문(波紋)처럼 퍼져 나갈 뿐... 긴 시간을 두고 연습해왔던 찌의 부상(浮上)에 감응(感應)하는 챔 질은 녹녹치 않은 붕어의 저항을 줄과 대를 통해 이야기 듣게 해주고 줄의 직선(直線)과 대의 곡선(曲線)이 만들어 내는 탄력(彈力)의 역학(力學)은 붕어의 입과 눈과 비늘과 꼬리로 이어지는 손맛이라 불리는 힘 뒤에 사실은 별 의미 없는 길이를 가늠해 보게 한다. 손맛 보러 간다던 사람들은 꼭 그렇게 길이를 따지는 우(愚)를 범하고 만다. 내가 오늘 잡은 첫 수의 붕어를 여덟 치라고 가늠하듯이... (나광) 016_essay10261849.jpg 형님은 참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리고 내가 살던 동네 인근에서 최초로 S대 법대에 진학한 수재였다. 나와 일곱 살 터울이었던 형님은 내가 꿈꾸던 이상(理想)이었고 내가 가고 싶던 길을 가는 선도자(先導者)였다. 완고하신 조부의 성화에 못 이겨 법학(法學)을 택했던 형님의 가슴에는 언제나 문학(文學)에의 열망이 뒤끓고 있었고 그 시절 중학생이었던 난 형님을 통해서 '헷세'나 '톨스토이' '헤밍웨이'를 알았고 '미당(未堂)'과 '영랑(永郞)' 또 '릴케'와 '베를넨느'의 운문(韻文)을 접했다. 방학 때면 내려와 낚시터에서 낭만과 사색을 탐닉(耽溺)하던 형님... 그에게는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고 함초롬히 핀 박꽃처럼 아름다웠던 그 여인은 산지기 집 딸로 태어났다는 책임 없는 원죄(原罪) 때문에 조부님의 반상(班常)이란 개념(槪念)의 덫에 걸려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목이 메이고 있었다. 몇 번인가 난 그들에게 연애편지를 전달해 주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둘 사이를 오간 적이 있었고. 애달픈 그들의 사랑은 마치 가을 산의 옻나무 단풍처럼 그렇게 붉고 처연(悽然)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해질녘 저수지 한 모퉁이에서 낙조(落照)에 물든 수면위로 붉은 톱을 치켜들며 솟는 찌를 본적이 있는가? 제색(綠色)을 반쯤 잃어버린 뗏장수초 언저리에서 두 번째 입질은 그런 화사한 몸짓으로 내게 다가 왔다. 지난 세월을 반추(反追(芻))하며 분실된 시공(時空)을 넘나들던 내 감각들은 그 순간 손끝에서 꾼의 예기(銳氣)로 모아지고 한 마디 한마디 높아지는 찌를 보며 내 눈은 허(虛)와 실(實)의 교차점(交叉點)을 찾는다. 그리고 문득 고기의 크기는 찌 올림의 속도에 반비례(反比例)함을 생각해 내고 느린 솟음에 더욱 경직(硬直)된 손짓으로 긴장의 정점(頂點)무렵 대를 당겨 바늘이 붕어의 윗입술에 꽂히는 소리를 감각으로 듣는다. 한사코 돌아서기를 거부하는 붕어를 달래며 손끝으로 전달되는 인력(引力)의 짜릿함이 안도감으로 바뀔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보고 그렇지 말자던 맹세도 헛되이 붕어의 옆줄 따라 눈어림의 자를 다시 대고 만다. 턱거리는 될 것 같다! 인습(因襲)이란 이토록 끊기 어려운 것이었던가? 아무런 의미 없는 것에도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형님의 죽음은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사람의 똑똑함과 세상을 살아나가는 힘은 전혀 별개였던가 보다. 조부(祖父)의 완고(完固)함과 여인의 사랑사이에서 번민(煩悶)하던 형님은 '이상(李箱)'도 '카프카'도 그리고 형님이 그렇게나 아꼈던 스스로 만든 오죽(烏竹)의 낚싯대도 스스럼없이 팽개치고 여인에게 보내는 한 장의 연서(戀書)만을 남긴 체 스물 세 살의 짧았던 세상과의 인연을 마감했다. 지렁이 낚시는 고기와의 놀음이 빈번해 좋고 떡밥낚시는 찌 오름이 아름다워 좋으며 새우낚시는 사색(思索)의 시간이 길어 좋다. 이제 노을이 지고 찌톱의 붉은빛이 검은색으로 비칠 때 나는 찌불을 끼워야 한다. 어둠을 읽는 일에 서툰 나는 찌불을 밝히고 그것을 통해 절연(絶緣)된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새우를 매단 날은 초점 잃은 눈빛으로 푸른 찌불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며 잃어버린 옛 이야기들을 기억해 낼 것이다. 그것 또한 비린내 맡고 낚시 즐기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特權)이 아니던가? 054_essay10272390.jpg 몇 해 전 여름 난 이 낚시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비 내리기 전의 보랏빛 우울함이 저수지를 물들이고 있었고 그날 따라 잦은 입질을 보여주던 씨알 좋은 붕어에 취해 시작된 빗방울 마다않고 손맛을 만끽(滿喫)하고 있을 때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애절(哀切)한 울음소리가 있었다. '경덕'아...! '경덕'아....! 억새풀 무성히 자란 작은 무덤 가에서 산발(散髮)한 여인하나가 애절한 울음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며 절규(絶糾)하고 있었다. 아스라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설지 않은 이름과 폐부(肺腑)를 도려내듯이 통곡하는 여인의 모습을 조금은 송연(悚然)한 가슴으로 바라보던 나는 소스라 칠 듯 놀랐다. 그건 형님의 무덤이었다. 다스려 주는 사람 없어 무너지고 흘러내려 비록 억새 밭이 되었지만 분명 그곳은 형님이 잠든 곳이었고 흐트러진 옷차림과 산발한 머리를 한 채 형님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는 여인은 살아생전에 형님이 그토록 이나 사랑했던 박꽃을 닮아 눈부시도록 희고 아름다웠던 여인 산지기 집 딸이었다. 그리고 바람결에 전설(傳說)처럼 들려오던 그 얘기가 사실임을 짐작했다. 흐린 날이면 늘 저렇게 찾아와 피 토(吐)하는 절규(絶糾)를 한다던! 눈물이 맺혀와 찌를 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한 맺힌 사랑이었으면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을 차마 죽지 못하고 모진목숨 부지한 채 실성(失性)한 여인이 되어 비 내리는 날이면 사랑했던 사람의 무덤 가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을까! 누가 감히 피를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그날 난 물고기 담긴 살림망을 물가에 매달아 둔 것도 잊어버리고 비련(悲戀)의 통곡소리를 가슴으로 들으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련한 기억을 이끌어내느라 흐릿해진 내 동공(瞳孔)을 통해 비스듬히 쳐 두었던 세 칸 반대의 찌가 오른다. 조금 전 입질도 놓친 체 그저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도 붕어는 다가오는 월동간(越冬間)의 안주(安住)를 위해 노림수를 품고있는 새우를 탐(貪)했었나 보다. 한 점 찌불은 발광(發光)의 반경(半徑)을 점점 넓히려 들고 나는 비로소 손맛을 탐닉하는 낚시꾼으로 돌아온다. 느리게 솟던 찌는 가끔 그렇듯이 옆 걸음 질 쳐 대어의 입질임을 말해주고 더 큰 힘의 크기를 원하는 나는 말아 쥔 손잡이에 긴장의 땀을 적신다. 하나, 둘, 셋, 호흡으로 세던 숫자를 멈추는 순간 빠르고 강하게 거두어 드린 대 끝에는 생각보다 강한 저항이 실려있다. 바늘에서 목줄로 원줄에서 초리로 장비(裝備)의 안위(安危)가 순식간에 뇌리를 스치고 안심한 내가 낚싯대에 힘의 크기를 더할 때 붕어는 한사코 수초를 향하고 내 낚싯대는 그 저항(抵抗)의 힘을 빗대어 뭍을 향해 눕는다. 먼 곳으로부터 뒤집어 지기를 몇 번이던가? 생각보다 길었던 박빙(薄氷)의 줄다리기 끝에 저항을 포기한 채 이젠 희부연 자태(姿態)로 배를 드러내 보이며 발 아래까지 끌려나오던 붕어는 원줄을 잡고 무게를 가늠하는 무방비(無防備)의 일순간(一瞬間) 최후의 바늘털이 한번으로 목줄을 떨군 채 제가 살던 수초를 향해 꼬리 짓 두어 번으로 사라져 가버렸다. 가을밤의 차가운 기온에서도 등줄기 땀이 고이도록 실랑이했던 대어를 놓친 나는 허무하다. 그리고 손맛을 즐긴다는 미명하(美名下)에 또 스스로를 기만(欺瞞)했음을 생각하고 쓴웃음을 짓는다. 나는 보다 긴 체장(體長)을 가진 붕어의 소유(所有)를 원 했던 것이다. 차마 쥐어보지 못하고 가버린 허무함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아쉬움이 후일(後日) 붕어에 대한 더 큰 열망(熱望)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맺을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첫사랑같이.... (나광) 044_essay10300996.jpg 떨치고 나간 붕어를 나는 아마 두 뼘을 넘어선 대물붕어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가끔 만나는 조우(釣友)들과의 술자리에서 오짜를 터뜨렸노라고 두고두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치 형님의 못 이룬 연정(戀情)처럼 오랜 시간동안 가슴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맺지 못하고 가버린 것은 모두가 아쉬움으로 남는가 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이름 지어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가 보다! 무서리 내리던 그날 밤새 대물붕어와 형님은 그리움이 되어 작은 저수지 가를 맴돌고 있었고 억새는 밤바람에, 흐느끼는 여인의 작은 어깨처럼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다. *** 끝. 어느 늦가을 옛 추억 서린 영산포 근교의 어느 소류지를 다녀와서... 어유당(魚有堂) 올림

누구든 회상의 앨범 속엔 사랑과 연민 ,아픔과 애절함이 있죠.

그속엔 눈물도 있을테고요.

덮어두어야 할건 덮어야하고 잊어야 할건 잊어야겠죠.

앞을 보고 살아야할 삶이 과거의 동아줄에 메여 산다면..............

덮을건 덮고, 잊을건 잊고,.......

자..............................

앞을 위해서는 뒤 돌아보지 맘시다....

눈물 날려고 합니다.............

나도 과거의 잘나가든 시절이 있었고, 짱짱하든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열심히 해볼랍니다.

지난 세월이 현실이 될수 없기에.....
뭉클한 알수 없는 감정이 제 눈시울을 살짝
적시게 합니다.
두분의 아름다운 사랑이 열매를 맺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늘 감동을 주는 좋은글 잘 보고 있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어유당님의 글에 문학을 아시는분일꺼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군요.
낚시글을 모아서 한권의 책을 엮어내실 요량은 없으신지요?
건강 하시고 안출 하십시요.
사실 저와 별 인연이 없던
이 '월척(越尺)', '추억의 조행기'에 첫 글을 올릴 때,
나도 중고장터를 통해 '산만한 낚시대 몇 대 교환해서
도회(都會)의 조우들처럼 예쁘게 셋팅하고 낚시 한번 해 볼까'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던 저는
그러기 위해선 약간의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깊은 생각 없이 올린 미천한 글 뒤에 인사 삼아 남겨주신
몇몇 조우님들의 격려 댓 글은 눈치 없는 이 낚시꾼의 가슴에
칭찬으로 들리기에 충분했고
제 흥에 겨워 또 다른 몇 개의 낚시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했습니다.
오늘 문득 그 동안 제가 올린 글들을 살펴보다
놀이공간이란 게 모름지기 비빔밥처럼 여러 종류의 양념들이 섞이고 얽혀야
제 맛이 나는 법인데 다른 사람 입맛도 생각지 않고
제가 뿌린 양념이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쳤다면, 붕어 잡은 이야기라면 신이 나서
평생을 두고 반복하는 꾼의 습성쯤으로 이해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상사는 일에 정말 서툰 저는
애초의 의도,
낚싯대 교환하는 일은 엄두도 못 내고 딴 짓만 하다가
오늘도 그냥 허접한 낚시대 몇 대 들고 물가로 갑니다.
후일 들려 드릴만 한 이야기 꺼리 생기면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그 동안 정성스럽게 댓 글 주신 조우님들께 한번 더 깊은 감사드립니다.
가지 마세여....
빨리 찾아오세여...
선생님 없으면 무슨재미로 ...
항상 곁에서 선생님 글 기다립니다 ...
아직은 내공이 모자라 추억이랄것도 없는 허접꾼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마주치는 숱한사연과 기억들,잊고살아야 더편하고
돌아보지 말아야 더 편할것만같았던 일들,
어느날 문득 그런기억들로 아무도 모르게 눈물짖게는아픈기억하나쯤은 누구나 있겠지요.
외면하고 살기는 어렵지 않을겄입니다.
추억하며 산다는것 ,가끔은 그 아픔마저 추억으로 반추할수있는 여유로움은,
얼많큼이나 더 살아내야 가능할런지......

님의글은 늘 가슴한켠이 싸~~~해지는 아련함이있습니다.감사히 보았습니다
어유당님의 글을 빠뜨리지 않고 읽는 팬입니다.
부디 떠나지 마시고 주옥같은 글을 계속 올려 주시길 빕니다.
낚시 라는 과정을 어찌 그렇게 글로 표현을 하실수 있는지...
또 그 재주가 부럽읍니다
또다시 이글의 여운이 가시기전에 다른글이 올려 지기를 기다려 봅니다
애독자 입니다.

감사 하는 마음으로 어유당님의 조행기 읽고 있습니다.

에구 낚수대 개비 못하셔..............어떡하나요. ㅡ.ㅡ;;
석조에 맺힌 글에 참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읍니다
낚시자체에 뭔 감동이 있겠읍니까
과정이 늘 감동이지요
밤하늘이 어둡습니다
천상에서 다시만나서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이루시겠지요... 영원히....
^^|~익™

~! ~~! ~~~!

댓글!!!
어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어유당님의 글을 정독하다보면,

오늘은 왜이리 가슴이 저리는지???
어제는 왜이리 가슴이 평화로은지???
그제는 왜이리 가슴에 고향이 가득해지는지???

댓글하는 이공간이,
저한테는 고통으로 물듭니다.

저의 초라함에 몸서리치며 ~ ^^|~익™

대물21 올림
어유당님에 가슴에 남는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올리신 글들중에서 오래전부터 인터넷에서 보아온 글이 몇편있어 혹시 원래 작가가 어유당님 이었나 궁굼해 여쭈어 봅니다.


"좋은글" 828번 노지님이 올리신 '낚시와 인생 -작가미상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글) 에서

삶의 고비마다 괴롭고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낚시가방을 들쳐 매고 낚시터를 찾아 마음을 달랬던 기억들이 새롭다.그리고 밤낚시에서 물안개 속에 묻혀서 인생의 쓴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토로하며 아픔을 달랬던 사람들이 새삼 그리워진다.그리움을 겹겹이 쌓으면서 세월을 휘돌아 가는 것 같아 요즈음은 왠지 쓸쓸함을지울 수가 없다.아마 거슬러 되돌아 갈수 없는 아픔 때문이리라. 이루어지지 않는 유혹은 그리움이자 고통이 되었다.


부분이 빠져있는 글이네요....

"낚시터 환경개선"에 올리신 "붕어가 전하는말"도 인터넷에서 오래전에 본글이고....

혹시 보신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세요.
뭔가 뭉클함이 눈시울을 붉게 만듭니다.
동기가 어찌됐든간에 좋은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했는데 언제나 다시 접할수있을지요.
부디 좋은글 다시볼수있을 날이 빨리 왔으면합니다. 동안 건겅하세요.
오직대물님,
두개의 글 모두 연전에 제가 썼던 글들 맞습니다.
다른 닉네임을 사용 했었지만...
월척의 좋은글에까지 올라와 있을 줄은 몰랐네요.
빨간 글씨로 지적하여 주신 부분은 누군가가 임의대로 덧 붙여 썼나 봅니다.
이 글(억새못의 비가)에 대한 후기도 한편 있구요.
아무튼 참 재미있는 세상입니다.
웃고 말아야지요.
아 그렇군요.
얼마 전에 좋을글 란에서 눈시울을 붉혀가며 읽었습니다.
어유당님의 글을 읽다가 혹시 그 글도 어유당님의 글이 아닐까 궁금했었는데
역시나 그랬군요.
언제부턴가 어유당님의 글이 올라왔으려나 하고 추억의 조행기란부터 먼저 들르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낚시 수필집 한번 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계속 글 올려주시면 하는 바램은 저만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름다운 글로서 계속 뵐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좋은글"의 "낚시와 인생"은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던 글입니다.
그 작가미상의 가슴에 남는글을 쓰신분이 "어유당"님이라니 놀랍고 반갑습니다.
잠시 위 글에 자작(自作)에 의문을 가진점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 드립니다.
좋은글은 손끝이 아니라 마음에서 써지는 것이라면
"어유당"님에 글은 언제나 내 가슴에 감동으로 남아 있으니......
그 글에 깊이를 느끼고 갑니다.
다시한번 사과 드리며 오래동안 글을 대할수 있기를 학수고대 합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요.
어유당님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마치 다시 안오시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에 뒤늦게나마 감사말씀 올립니다.
꼭 낚시꾼 가슴을 적시는 좋은글 다시 읽을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곳에서 그 글(붕원숙~)을 먼저 접하였으나
환경개선란에 어유당님이 올리신 것을 보고 작가가 누군가 했더니 역시.. 하고 왠지모를 반가움을 느꼈던~^^
거기에 등장하는 'ㄷㄱㄹ'라는 분이 지금 다시 읽어보니 친구분이셨고요^^
위분들이 감정적으로 잘 표현 해주셔서 전 더할말이 업으나

여유당님 글을 잃노라면 내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보는 마은가짐이 대여 봅니다

아무쪼록 건강히 행복한시간 되시길 바라며

기회가 되신다면 한번 찾아뵙고 싶은 분입니다 ~~~
어유당님 여전히 읽는이의 가슴에 한가지씩의 후회를 남기게 하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순히 낚시놀이를 즐기며 물가에 않아있는것만으로도 즐겁고 또한 고즈녁한 시간을 통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 살아갈날을 생각하고 가족을 한번더 돌아보고 주위사람들도 한번더 생각해보는

참으로 멋진 취미임에도 불구하고 마릿수와 고기의 크기에 너무 연연하는 제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합니다.

언제쯤이면 어유당님처럼 그저 물가에 앉았다는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깊은 상념에 빠져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수

있을까요...

월척이라는 공간에 어유당님처럼 큰 스승과같은분이 계신것만으로도 너무 감사드리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혹여라도 마음에 차지않는 일들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생각해주시고 자주 좋은글로 읽는이들에게 귀감이

되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뜻하시는것들 다 얻을수 있으시기를 빌어봅니다. 감사힙니다.
저도 윗분들처럼 어유당님의 가슴뭉클한 글을 볼수 있다는게...

저로서는 큰 행복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내 두루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어유당님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눈팅만 하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어유당님 글은 끝까지 보지 않을수 없는 멋진 소설인것 같습니다

낚시와 인생
가슴의 아픔과 기쁨이 녹아나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잘보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늘 즐거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연전 타 사이트에서 읽고 느꼈던 그 감명이..
안온한 사진과 함께 더 감동으로 전해져 옵니다
어유당님의 글을 월척에서 접하니 너무 반갑네요
앞으로 추억의조행기 매니아가 되어 볼까 합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억새못의 비가를 오늘 오후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퇴근시간 훌쩍 넘은 시간 다시 억새못의 비가를 읽고 있습니다.

올 해 처음으로 추억의 조행기 문을 오후에 열었다가
그 간 남기신 님의 글을 다 읽다보니 약속시간도 지나 버렸지만,
지켜야할 중요한 시간이 무색한 ...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낚시이야기를 가슴으로 너무나 진하게 담았습니다.

사실 물가에 설 시간이 잘 나질 않는 요즘은
드문 드문 올리던 화보조행기도 못 올리고 있지만,
몇 편의 조행기를 올림이 많은 사진들과 함께인데도 여간 힘에 부치는것이 아니었는데......

우리의 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깊이가 있는지 새삼 알았습니다.

또 뵈올 수 있는지요?
가슴 뭉클한 글 --- 감사합니다.

<손맛이라 불리는 힘 뒤에 <br/> 사실은 별 의미 없는 길이를 가늠해 보게 한다.
손맛 보러 간다던 사람들은 꼭 그렇게
길이를 따지는 우(愚)를 범하고 만다.>

제가 낚시를 하면서 잘못된 점이 여기 있군요.
언제 한번 물가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안출하십시요.
왜 이러는고얏

토요일인데도 창밖의 빗소리땜에 낚시도 못가서 심통만 나는데

왜 날 이렇게 심연의 나락으로 푹 빠치는고유 응

앞가슴 전체에 싸하는 아픔도 자꾸만 눈사위가 깜박 거림도 님이 책임 질꼬야??

왜 왜 왜 아침부터 날 울리려고 이러는거유 책임져유 얼른 다시 오셜라무네 추억담을 들려줘유 ㅋㅋ
가슴찐한 글 또 보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조행기 잘 봤습니다.감사합니다.
좋은 글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어유당님 글 잘일고 항상건강하세요...
글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글내용이 필름 처럼 상상이 되며 지나가는것 같네요 어떻게 보면
단순한 글이지만 읽는 사람마다 상상하기 나름이며 저같은경우엔 맑은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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