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
산란도 끝나버린 어느 4월의 근교 저수지,
그날 그곳을 찾았던 대부분의 꾼들은 몰황을 기록했고
한나절 내내 팔이 저리도록 수초 틈새를 노려
큰놈 한 수 뽑아 보자던 내 노력도 공염불이 되어가던 정오 무렵,
잠깐 사이에 월척 두수를 뽑아들고 나타난 후배 보트꾼의 모습은
견물생심이라는 단어의 용도를 내게 깨우쳐 주기에 충분했고
벌써 몇 년째 창고에서 썩어 가고 있는 보트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보트가방을 꺼내어 묵은 먼지를 털기 시작했고
수초 많은 저수지 상황을 염두에 두고는 4칸대 한 대와 3.6칸대 두 대를
수초치기 채비로 전환까지 해 두었습니다.
다음날 동이 트기가 무섭게 저수지에 도착한 나는
보트 셋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앞치마도 텐트도 생략하고
엄지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나버린 매트조차도 팽개쳐버린채
보트바닥에 달랑 의자 앉힐 작은 널빤지 한 장 깔고서...
눈 여겨 보아두었던 수초 대에 붙어 서툰 직공 채비 세대를 내렸습니다.
엉성한 보트꾼을 붕어가 얕잡아 보았나 봅니다.
연안에서는 온갖 아양을 떨며 사정해도 외면하던 붕어들이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덤벼듭니다.
그러기를 한나절,
서툰 뽕치기에 큰놈은 죄다 떨구고 힘에 맞는 놈으로만 열 댓 수 했습니다.
턱걸이 두수에 여덟 아홉 치 열 세 마리...
그래도 이게 어딘가!
오랜만에 맛 본 보트 조황에 흐뭇해하며
점심 먹으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물 밖으로 나와 보트를 말리고 있을 때,
연안낚시를 즐기시던 두 분의 노 조사께서 다가왔습니다.
'붕어 좀 구경해도 될까요?'
'아! 네 그러십시오.'
살림망을 들춰보던 노조사가 실색을 합니다.
'아이쿠 이 붕어 봐라! 손맛 단단히 보셨네.'
제법 쌀쌀했던 아침 기온 때문에 두툼하게 입었던 옷차림이
따스한 정오의 햇살아래서는 비둔합니다.
뚱그적 거리며 서툰 솜씨로 보트를 접어 가방에 넣으려는데
잘못 접혔는지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고 있던 중에
저수지를 한바퀴 둘러보던 두 노조사가 다시 다가옵니다.
'붕어 한번 더 보고 싶어서... 헌데 살림망이 안보이네?'
'예?...' 그제서야 찾아보니 살림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쿠! 이걸 어쩌나 물에 들어가 버렸나?
아까 내가 들쳐보고 잘못 놓았나보네...'
물 속에 빠져있는 살림망을 건져보니
이미 그 속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사투리가 전혀 섞이지 않은 걸로 보아
이곳 분이 아닌 듯 싶은 두 노 조사는 어쩔 줄을 모르며 무척 미안해합니다.
'괜찮습니다. 그 붕어들은 어차피 제가 다시 잡을 거니까요!'
우리는 마주보고 웃고 말았습니다.
에피소드2
전날의 조황과 놓친 붕어를 잊지 못해서 다시 이른 출조를 합니다.
보트에 바람을 넣는데 어제와 달리 주입구 접착부위에서
미세하게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이 새는데 괜찮을까?' 잠시의 고민이 있었지만
어제의 호조황이 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많이 새지 않으니까 상관없을 거야!
안전조치 한답시고 보트에 펌프를 싣고 어제의 포인트로 향합니다.
어제와 달리 바람이 불고 입질도 뜸합니다.
햇살이 퍼질 때까지 아홉 치 두수에 대형 빠가사리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그런 사이에도 가끔씩 바람 빠진 보트에 펌프질하는 일은 계속 됩니다.
아예 공기 주입구에는 펌프호스가 꽂혀 있습니다.
마치 중환자의 산소호흡기처럼,
'햇살이 따가워지면 어제의 대물들이 움직이겠지!'
아직도 희망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기온이 오르고 바람이 잦아 들어도 붕어의 씨알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포근함이 나른함으로 바뀔 무렵 갑작스레 이상한 기분을 느낍니다.
보트에 바람이 갑자기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펌프질을 해봐도 채워지질 않습니다.
살펴보니 주입구 풀칠부분이 거의 터져 있습니다.
대략 난감입니다.
서툰 생각에 폴 대만 꽉 잡고 있으면 물에 빠지는 일은 없으리라는 제 생각은
희망사항에 불과 하다는 걸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빠지자 폴에 붙어있던 링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매트조차도 없는 바람 빠진 보트,
사람과 낚시가방과 의자를 바닥에 깔린 작은 널빤지 한 장으로 견디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보트는 점점 찌부러 들고 있었습니다.
몸 하나야 건져 나온다지만,
촌놈 밥 굶어 가면서 사 모은 정들고 피 같은 낚시장비,
모두 수장시켜야할 지경에 이른 절대절명의 순간,
기적처럼 후배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월척 두 마리로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상황을 간파한 그는 저수지 한켠에 메어둔 자신의 애장품 나무쪽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구했습니다.
바람 빠진 고무보트로 물이 넘쳐들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모처럼 보트 타다 엿 됐습니다.
그래도 제가 찬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살진 않았나 봅니다. ^^
저는 보트 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꾼들 중엔 보트낚시를 즐기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특히 수도권의 나이 드신 조우들...
그분들은 한결같이 너그럽고 정이 많은 분들입니다.
십여 년 전 어느 조우 한 분이 한적한 물 가운데서 나란히 붙이고 앉아
이야기라도 나누자 면서 가져다준 보트.
비록 낡은 보트라도 곁에 두고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분들과의 인연의 끈을 꼭 쥐고 있다는 저 나름대로의 의미인데...
저 바람 빠진 보트는 이제 어쩐답니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고, 갈충이는 갈잎을 먹고살아야 한다고,
이젠 보트조우들 만나도 연안에서 밥이나 짖고 커피나 끓이면서
떡밥 대나 두어대 펴야 될 것 같습니다.
여름이 지고 있습니다.
얼굴을 스치는 가을 담은 바람 한 점이
문득 그리운 조우들 곁에 제 생각을 머무르게 합니다.
이 가을엔 잊지 말고 기별해서
그때 놓친 붕어 한번 잡으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비나리는 남도에서
어유당(魚有堂)올림.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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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여유있고 넉넉한 글에 나자신를 되돌아 봅니다.
저도 남도라(광주) 언제 한번 뵙고 싶어집니다.
무슨일이 있었을까?? 혹시 안좋은 일이라도?? 자꾸만 자꾸만 안좋은 생각으로 머리가 기울어 집니다
아니야 아니야 아무일도 없으실거야 잠시 시간이 없으실 뿐일거야...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참 이상합니다 이렇게 소식을 뚝 끊어 버릴수는 없는데 ...
어유당님의 작품을 내 나름데로 모아 모아서 한글에다 스크렙 해놓은곳을 찾아 옛글을 읽어봅니다
사람사는 냄세와 고향의 향수가 물신 물신 풍겨나는 환상에 젓어봅니다 그러다가... 그래 내가 먼저 그분을 찾아보자
타이틀을 정해봅니다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립습니다 어유당님) 여기까지 써놓은다음 망설이기 시작한게 보름을 넘기네요
요즘 가뜩이나 노인네들 글 올리는걸 싫어하시는 분들에게 페가 되지 않을까... 결국은 주저하는 마음이 여기까지 왔네요
아무튼 너무 너무 반갑습니다 이제 어유당님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님의 글을 기다리는 목마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길어졌네요 건강하시고 추억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어요 오늘도 좋은꿈 꾸시길 빌께요
오랫만에 뵙습니다.
에피소드 잘보고 갑니다.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글을 올리시는 것 만으로도
잘계신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한동안 글이 안 올라와서 내심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
앞으로 종종뵈면 행복하겠습니다.
첫번째글은 우습고 두번째글은 약간 무서웠습니다.
가까운 곳에 계셔도 한번 뵙지도 못하니 ..
꼭 한번은 시간내서 모시고 낚시한번 하고 싶습니다
자주 올려 주십시오,,,
어유당님의 글에는 사람의 온기가 넘칩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어유당님 잘보고 갑니다
붕어 두 마리에 욕심을 내시다니요~
웃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아버지랑 순대국에 쏘주하면서 낚시이야기를 하는데.. 아버지는 보트타고 댐낚시만 다녀셨드라구요. 제주도빼고 전국에 댐은 다 가봤다고 하시던데.. 전 손맛터만 두번간 왕초구요.. ^^
안전이 제일이죠..
물가에서의 꽝꾼의 눈에 들어온 후배의 보트조황에
어유당님이 흔들리셨군요.
그래도 오래 사용않은 보트를 손질해서
도전하시는 패기가 진한 덩어리 손맛을 얻으셨습니다.
이 가을에 그때 그 붕어들과의 멋진 한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