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시간은 있어.....'
87년. 6.29선언이 있던 그 어지러운 해.
전 춘천부근의 한 저수지에서 맞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한때 내신 1~2등급을 다투던 저는 순간의 삐뚤어진 친구들의 유혹에
성적은 급하향곡선을 그리고...술집, 당구장, 나이트클럽을 나다녔죠.
덕분에.....졸업때의 내신은 15등급중 8등급.
그당시 서울의 어디 후미진 대학은 간신히 들어갈랑 말랑하는 학력고사 점수.
별 뜻없이 재수나할까하는 제 결정을 바꾸신 건 할머니의 말씀이셨죠.
제주도 여행길에 묶었던 여관에서 시중드는 청년을 만나신 할머니.
그 친구의 바른모습에 이말저말 시켜보다 고향이 서울인 걸 알곤 놀라셨다죠.
"그런데, 왜 이 제주까지와서 고생하나?"
"예....제가 망나니 노릇을 하도 하니 집에서 친구를 멀리하라고
이 제주에 던져 놓고 가셨죠. 한 2년 넘게 일을 하며.....어쩌구"
거기에 감동받은 우리 할머니께선 재수하겠다는 절 칼로 무우자르듯 ,
제주청년 본 받으라며 멀~~리 지방대를 가라하시더군요.
부산이냐......강원도냐........2개를 놓고 고민하다 과감히 더 조용할 것 같은
강원도 춘천의 모대학으로 결정했습니다.
서울 촌놈.
저희 과를 통 털어 서울에서 온 놈은 저랑 또 한명. 저희는 대부분 집이
강원도권인 과친구들에게 야릇한 거리감을 받아야했죠.
그 친구들은 서울을 무조건 샌님들. 혹은 부자들만 사는 동네라는 선입견을
드러내놓진 않았지만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나름대로 고딩때 놀던 전, 이 순박하고 의리를 챙기는 친구들이 좋았기에
어떻게든 어울릴려고 무진 애를 썼죠. ^^;
술.....당구......미팅.......대부분 그러한 것들로 대학 첫 시작을 메꿀무렵,
두 눈을 확! 크게 뜨게 만드는 대자보 글귀가 붙어 있었으니........
[ 낚시회원 모집]
새 학기를 맞이하여 신입회원을 뽑습니다. 어쩌구....저쩌구.....
시조회 일정.
0000년 4월 0일
회비 5000원
준비물 *******************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잊고 살던 낚시가 갑자기 떠오르며 꾼의 기질이 슬슬 나오더군요.
당장 가입했습니다. ^^
"야, 니가 뭐 낚시를 아나?"
같은 기숙사에서 묶는 과친구 한놈이 실실 쪼개며 비웃습니다.
이 녀석은 영월 출신. 까무잡잡하고 눈은 부리부리하고 미팅때만 되면
내 옷을 빌려 입고 나가는 같은 과놈입니다.
서울에서 온 놈이 낚시 한다니 제딴엔 우스웠던 모양......
"자식. 숱하게 잡았다, 임마. 넌 좀 하냐?"
"얼래? 함 같이 갈래? 누가 더 잡나?"
결국....그 놈 역시 회비 5000냥을 내고 합류....시조회에 가기로 했죠.
그당시 서울놈이란 편견이 싫고 남자다운 강원도친구들이 좋아
술자리에서도 지기 싫어 매일 말술을 먹어 댓병이란 별명을 얻은 전
이번 역시 서울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낚시를 못한다는 말이 듣기 싫었습니다.
드디어......당일 새벽.
아직은 4월이라 춥기만한 새벽. 춘천의 새벽안개를 가르며 버스는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저수지.(지금도 이름을 모릅니다)
춘천으로 달랑 이불만 들고 온 전, 낚시대가 없기에
본부석에서 제공한 낚시대 하날 얻어 사용해야 했지요.....
낚시대를 얻으며 슬쩍 보니 이런저런 상품이 그득~~하더군요. 캬~
"야, 상품 꽤 많던데? 일등해서 이 기회에 대장만해야겠다."
"얼씨구? 잡으면 다행이지~"
"좋아, 야! 누가 더 좋은 상품 타나 내기하자"
"좋아! 저녁때 술도 사는 걸로 하자!"
"(얼라리? 이거 자신 무쟈게 있나보네....) 좋아! 닭갈비 콜!"
결국.....친구와 전 나란히 앉아 잿밥에 눈이 멀어 투지를 불태웠죠. ^^;
계절은 초봄. 저수지 상류. 수심 약 80센티. 주변엔 수초도 그득.
그러나............저 놈의 맞바람............
그 칼끝처럼 얇은 점퍼를 파고드는
4월의 바람이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지만 묵묵히 낚시를 하는 옆의
친구를 보곤, 존심상 내색도 없이 견뎌야했습니다.
그러나.............입질이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저뿐 아니라 같이 간 일행 모두가 다 빈작에 실망하고 있는 분위기였죠.
음.....다 이러니 뭐 아직은 안심이군.......
그때였습니다. 옆의 친구가 한 챔질에 대끝이 파르르..............
헉! 순간 긴장......
"으하하하!!! 잡았다, 임마! 캬캬캬캬캬......"
닝기루.......저놈이......ㅜ..ㅜ
딸려나온 걸 보니.....살치 10여센티짜리.......
"얌마! 붕어도 아닌 걸 가지고....건 갖다 뭐하냐? ㅋㅋㅋ"
"흐흐......그래도 난 살림망이나 펴본다. 넌 뭐하냐?"
음....저 놈이 염장을.....이거 월척 한마리로 저 콧대를 부숴줘야하는데....
그런데 잠시후 둘러 보던 총무님이 지나가며 한 말은 친구의 콧대를
한층 높였으니........
"고기가 너무 안나와 전 어종을 계측대상으로 하니 염두하세요."
찌를 바라보는 눈끝에 힘이 들어갑니다. 추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음....아직은 한두시간 정도 남았어......기필코....
그 순간, 친구놈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우하하하.....또 걸었다, 캬캬캬캬....."
닝기루.....이번에도 피라미.....것두 겨우 4~5센티? 겨우 저걸 가지고
저리 호들갑을......잠시후 존경의 눈초리를 보내게 해주마......
"우하하하.....또 걸었다, 캬캬캬캬....."
닝기루......이번에도 피라미.....그런데 슬슬 부러운 건 왜일까요.....
"야, 낚시했었다면서? 어째 한마리도 못 잡냐?
"................(인간아....피라미 3마리 갖고 이 유세를 떠냐...)......."
침이 바짝 타는 가운데....어느덧 시간은 10분 남짓만 남겨놨습니다.
옆에 있는 점심때 먹다남은 쐬주잔만 홀짝이며 슬슬 허탈감을 느낄 즈음...
저멀리 낚시총무가 계측을 하며 오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저 놈한테 패하다니.....만약 상품이라도 하나 타면
저놈 또 술까지 먹여줘야 하나.....ㅋ......ㅠ..ㅠ
"**야, 계측하는데 넌 어쩌냐?"
"..............................."
"내가 한마리 줄까나?ㅋㅋㅋ"
".............................."
"어디보자.....제일 큰 건 내가 해야하고.....어라? 한마린 또 죽었네?"
그러더니 이놈. 제게 제일 작은 피라미 한마리를 계측하라고 줍니다.
"싫다, 임마! 이것도 뭐 고기라고...치아라!"
약올리던 친구놈은 실실 웃으며 그 놈을 제 살림망에 넣으려합니다.
"야, 야, 방생이나해라. 너나나나 뭐 상품을 타기나 하겠냐?
너가 잡은 그 놈으론 어림도 없다, 임마!"
"ㅋㅋㅋ,,...그래도 한마리도 없음 쪽팔리잖아."
친구놈은 굳이 제 살림망에 5센티가 될까말까한 피라미를 넣습니다.
음....놈의 의도는 뭘까요.....더 쪽을 줄라는 건지.......?
마침내, 계측을 하던 총무가 와서 고기를 보자고 합니다.
뭐 잡은 것도 없는데...하며 말끝을 흐리며 친구가 고기를 보이자
계측자를 갖다 댑니다.
으잉? 저런 잡고기. 더군다나 10센티도 될까하는 놈을......?
그러더니 제 살림망을 보더니 고기를 꺼내려합니다.
"아니, 저...이건 뭐 잴 필요도 없는데......쩝"
그래도 총무는 굳이 자를 갖다대더니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갑니다.
게임오버.
친구놈의 저 득의양양한 미소.....역시 서울놈이 뛰어야 벼룩이지하는 표정.
그러나.....잠시후 본부석의 집합소리와 함께 역사는 뒤집어졌으니.....
드디어 시상식 시간.
한 스무명이 채 안되는 인원이 모인 자리에서
복학생으로 보이는 낚시회회장이 이런 저런 인사말을 하곤
시상을 시작합니다.
"에~~10등. ***씨!!!"
낚시회 회원을 많이 확보하고픈 욕심인지.....아뭏든 10등부터 있습니다.
하지만.....뭐 등수안에 들기를 포기한 저는 그저 멀거니 박수나 치는데....
"7등!! ***씨!"
헉! 이럴수가.....제 친구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귀를 의심했지만.....친구는 입이 귀에 걸려 나가서 상품을 받습니다.
이런.....저런 10센티가 갓 넘을까말까한 잡고기가 7등이라......
얼마나 빈작이었는지 모르지만 이건 지금도 볼 수 없는 보기드믄
시조회의 시상식입니다. ^^:
상으로 친구가 받아온건 프라스틱 다용도 소품박스.....(뭐 바늘이나
봉돌등을 담아두는 길이 40센티정도의 태클박스)
별로 비싼 건 아니지만 상품을 받고 등수안에 들었다고 친구는 콧구멍까지
벌름거리며 엄청 좋아합니다.
"봤냐? 캬캬캬캬.....7등이다, 임마!
약속대로 이따 닭갈비 거~하게 쏴라! ㅋㅋㅋㅋ"
젠장......하지만 뭐 별 수 없지요.....약속은 약속.
영예의 1등까지 시상이 끝나고(1등은 붕어 20여센티였슴돠) 슬슬
돌아서려는데, 다시금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에......아직 시상이 모두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번 시조회는 친목도모의 의미가 크기때문에
특별히 몇가지의 특별상을 준비했습니다."
무슨 소리일까.....특별상이라니.....????
"질퍽상! 낚시하다 실수로 물에 빠진 분께 드리는 상입니다. ***씨!"
ㅋ........한쪽바지가 펑 젖은 한 학생이 쑥스러워하며 나서자
다들 박장대소하는 가운데 상품이 수여됩니다. 그런데.........
"다음은.......치어상!
가장 작은 물고기를 잡은 사람에게 주는 상입니다. ***씨!!!"
그런상도 다 있나? 되게 웃긴다...하는데...
제 이름이......치어상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됩니다.
ㅋ........창피하긴 하나 그래도 상이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앞에 나가 상품을 받으니 기분 좋더군요.
"야, 너도 상 받았냐? 횡재했네......뭐냐?"
상품을 풀어보더니.........친구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것은 바로 낚시대. 2칸정도 되는 낚시대였습니다.
친구놈은 7등이라고 받은게 겨우 플라스틱박스 하난데.....
겨우 4~5센티짜리 피라미로 받은 상이 낚시대라니.........
주최측의 농간이 보통이 아닌듯......^^
친구는 좀전의 기분 좋던 웃음은 어딜가고.....인상이 구겨집니다.
"ㅋㅋㅋㅋ.....야, 고맙다. 너가 준 피라미 아님 이 낚시대
못 탈뻔 했다야. ㅋㅋㅋㅋ"
"......................................................"
"거참, 계측하지 말라는데 그걸 해가지고...ㅋㅋㅋ"
".............................................."
"야~~ 담부턴 이걸로 제대로 한번 잡아봐야지.ㅋㅋㅋ"
"........................................"
" 참! 넌 그 박스 낚시대도 없는데 뭐하냐? 걍 나나 주라.ㅋㅋㅋ"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내내 이런저런 얘기로 친구 속 좀 긁어주다
기껏 피라미지만 친구덕에 대를 탔으니 결국 닭갈비는 제가 쐈습니다. ^^;
(사실.....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았나....싶습니다만.....)
그때 그친구는 지금 강원도의 정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가끔
전화로나마 연락하고 지냅니다.
아마....제가 낚시로 상이란 걸 받은 건 그게 첨이자 마지막일겁니다.
어디가도 그 흔한 뽑기상도 못받았으니까요...
아뭏든, 치어상....질퍽상.....
순위만을 매기는 낚시대회가 아닌 학생때의 정겨움이 물씬 흐르던 그 상들.
때가 되어 혹 정출이라도 참가하게 되면 그런 상이름을 다시 듣고 싶네요.
피라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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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5
그래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전 국민학교때부터 홀치기실에 철사구부려서 바늘매가지고 갈대 묶어서 붕어잡았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온동네 소문난 낚시꾼이었죠
요즘은 그때랑 비교도 안되는 좋은장비를 가지고도 왜 고기가 안잡히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잼나는글 잘보고 추천때리고 갑니다
정겨운 출조 풍경이 그린듯 펼쳐 집니다.
질퍽상...치어상...
여유가 그립습니다.
덩치가 좋으셔서 그랬는지 좀더 젊게봤는데...
재미잇게 읽고갑니다`~~~
오가는길에 차나 하러 들러주세요`~~^^
87년....저와 비슷한 연식이시군요..ㅎㅎㅎ
아련한 옛추억들이 하나 둘...^^
벌써 아련~한 추억이네요. 26년 전 일이니....
케미의 꿈님,
87년에는 제가 고딩이 아니라 대학생 시절이었답니다.^^
저를 젊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국립대의 장점을 이야기 하며...
처음엔 제주도로 해외유학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쩌면, 양구에서 근무하다가
휴가 간다고
춘천에서 닭갈비 사먹을때 만나지 않았을까요?^^
눈에 익운 대명이 있어서 인사 드리고 지납니다.
한 편의 꽁트?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