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아래 소류지는 고즈넉했다. 제방 쪽에 세 명이 낚싯대를 펼쳐놓고 있었고,
상류 뗏장 밭에는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 낚싯대를 펴고 있었지만
밝은 달빛 탓인지 어디서도 붕어를 끄집어 올리는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준비해 온 막걸리와 안주거리들을 들고 상류 뗏장 밭에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 님 자리로 걸어갔다.
입질이 없어 무료했던 탓인지 그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언제 들어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낮고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한동안 지속되던 소류지의 정막을 깨뜨렸다.
“역시 보름이라 낚시가 않돼네?”
“달빛이 너무 훤해서 오늘 입질보기 쉽지 않겠는데요.”
나는 가지고간 낚시 의자를 우리 님 옆에 펴고 자리를 잡았다.
낚시의자까지 가지고 온 모습을 보던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아직 초저녁인데 좀 더 쪼아보지.”
“딱 봐도 오늘은 낚시 안 될 것 같은데요. 술이나 한잔하시게요. 제가 언제 고기 욕심내는 거 보셨어요?
선배님이랑 이렇게 술도 한잔하고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 것이 좋은 거지. “
“사는 이야기? 주말마다 낚시터에서 같이 낚시하면서 뭔 사는 이야기가 그리 많아서,
입질 없으면 엉덩이가 들썩여서 참지를 못하고…….”
“그러게요. 오늘은 족발 사왔어요. 출출하실 거 같은데 좀 드세요.”
나는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 그에게 건넸다. 그는 말없이 막걸리를 들이키고는 내게 술을 한잔 따라 주었다.
막걸리 서너 잔이 오가도록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가 좋았다.
수선스럽지 않고 조용한 성격이지만 언제나 그의 말엔 깊이가 느껴졌다.
그는 소설을 세편이나 출간한 작가였지만 그런 유명세를 과시하려 하지 않았고,
그의 말에선 언제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고는 했다.
그의 나이는 오십이었고 나보다 단지 여섯 살 많은 나이었지만 부모나 형제가 없던 나로서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가끔은 기억조차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는 고아였던 내게 혈육이 정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다.
그는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저수지 수면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온화했고 깊은 내면으로 몰입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낚시를 다니다보면 그는 시선을 찌에 두고 있지만 그곳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무언지 모를 내면으로 몰입되어 있는 느낌을 많이 받고는 했다. 그에게 있어 낚시란 사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나의 양아버지가 떠올려 졌다. 나는 그의 사색을 깨뜨리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선배님! 김 선생님 얼굴이 기억이 나세요.”
“기억나지. 내 삶을 바꿔 놓은 분인데. 근데 갑자기 왜?”
“갑자기 그분이 떠올라서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동시에 우리 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던 한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선배님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를 이렇게 바꿔 놓은 것이 그분이 제게 남겨주신 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선배님 조언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선배님이 제게 알려주신 낚시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달빛 속에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항상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말에 집중해주는 그의 모습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흉내내보려 애써 보았지만,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다른 생각에 몰입되거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이렇듯 그의 모습과 태도 하나하나가 내가 배우고 닮고 싶은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는 나에게 멘토의 의미가 되어 있었다.
내 말을 듣던 그가 잔잔한 미소를 짓더니 내가 말했다.
“사람이 쉽게 바뀔 수가 있을까? 바뀌었다면 그건 외부의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노력과 깊은 사고의 산물이겠지.”
“일부분은 무슨 말인지 납득이 가네요. 저는 선배님이 제게 낚시를 가르쳐 주신 것이 고마워요.
난 낚시가 좋아요. 이렇게 조용히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부여된다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어찌됐던 그분이나 선배님이 저를 바꿔 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아니, 나는 사람은 쉽게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해. 어쩌면 변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몰라.
타고난 천성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네. 몬테님의 천성이 원래 이 모습이었을 거야.
자라난 환경이 몬테님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지 천성은 그랬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건 우리 님이 제 예전의 삶을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세요.
제가 살아왔던 삶을 안다면 절대로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저는 정말 역겨운 삶을 살았어요.”
대화 속을 비집고 머릿속에 자꾸만 과거의 영상들이 단편적으로 떠올라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지금 모습이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사는지가 중요할 것 같은데…….”
“지금 모습은 나에겐 중요하지만, 과거 속 그 사람들에게 내 지금 삶의 모습이 중요할까요?
그게 나를 많이 괴롭혀요. 지금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아무리 많은 선행을 베푼다고 해도
과거에 상처를 준 사람들이에게 위안이 될 수는 없잖아요. “
그가 날 위로하듯 내 어께에 가볍게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 손길과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요동치는 마음을 조금 누그러지게 했다.
“내가 말한 것처럼 몬테님의 천성은 착한 사람이었어.
누구나 몬테님의 입장이라면 현재의 선행으로 과거를 속죄했다고 자기 위안을 했을 거야.
하지만 몬테님은 과거 사람들의 고통을 계속해서 마음속에 담고 있어.
나도 가끔 그 생각을 골똘히 해볼 때가 있어.
결론은 속죄라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 사람을 죽게 만들고 그 사람을 죽게 만든 죄를 아무리 안타까워하고 남은 삶을 선행을 하며 산다고 해도
그 죽은 사람이 살아 올 수는 없는 거잖아.
다른 사람의 삶을 온통 망가트려 놓고 내가 속죄하며 착하게 산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망가트린 것에 대한 속죄가 될까?
근본적인 속죄란 존재하지도 않는지 모르겠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삶이란 가능한 삶일지 모르겠지만,
속죄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몰라.
과거의 죄를 가진 사람들이 속죄라는 이름으로 자기만족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
그의 말은 내 생각과 동일했다.
오래시간 내가 마음으로 고통받아온 일을 그가 분명하게 선을 그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는 어떡해야 할까요? 그분은 내게 모든 걸 내어주시면서 단 한 가지 만을 요구 했어요.
속죄하는 삶을 살아가라고요. 그런데 속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차 알지를 못하겠어요.”
“몬테! 그분이 말씀하신 속죄하는 삶이란 더 이상 죄짓지 않는 삶을 말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아니었을 지라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우리 님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현재의 삶만으로 과거를 속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현재의 삶만이라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논둑을 타고 비늘님이 걸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가 넉살 좋은 특유의 어투로 농을 던졌다.
“낚시는 안하고 감방동기끼리 뭉쳐서 입낚이나 하고 있으면 월척은 언제 잡으려고…….”
조그마한 소류지라 비늘님의 말이 들린 것인지 제방에 앉아 있던 포커가
무넘기에 앉아 있는 촌사람에게 긴박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짭새다. 튀엇!”
뒤이어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놀린 것은 비늘님이었다.
비늘님은 은퇴한 형사였다. 서울에서 강력반 형사반장까지 지낸 그가 은퇴 후 낚시터를 찾아
이곳 영광에 집까지 마련하고 내려와 있었다.
영광 생활 이년 만에 그의 외모는 영락없는 시골 촌로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살아있는 눈빛만이 그가 단순한 시골 촌로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 느낌은 은퇴한 경찰의 느낌보다 오히려 조직폭력배를 은퇴한 사람 같은 분위기가 났다.
나는 그에게 앉았던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자리에 앉던 그가 족발과 막걸리를 보더니 눈을 흘겼다.
“뭣이여! 맛있는 거 둘이만 먹고 있었어? 자꾸 이럴래? 감방동기라고 둘이만 맜있는 것 나눠 묵고....”
건너편에서 다시 포커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식 나눠 먹던 습관이 붙어서 그런 거여요.”
나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는 건너편을 향해 외쳤다.
“까불지들 말고 넘어와서 술이나 한잔해.”
낚시터에서 큰소리를 내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었지만,
이미 분위기를 보아하니 낚시는 뒷전이 되어버릴 분위기 였다.
건너편에서 후레쉬 불빛이 켜지며 촌사람님과 포커님이 보조가방을 들고 제방을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낚시카페 도방 사람들.
카페명인 도방사람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아는 회원들은 많지가 않았다.
우리 님과 나는 비늘님 말대로 감방동기였다. 단 십여일뿐인 동기였지만 감방동기인 것은 확실했다.
소설을 세편이나 발간한 중견작가인 우리님과 백억대가 넘는 자산가인 내가 감방동기였다는 것을
진실로 믿는 회원은 많지가 않았다.
우리님과 나는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오히려 전직 형사였던 비늘님이 그런 곳과는 친숙할 것 같은 분위기 였다.
처음 나는 우리 님 둘이서 낚시를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영광까지 혼자낚시를 왔던 비늘님을 만나게 되었다.
혼자 라면을 끓이고 있는 그가 안쓰럽게 느껴져 준비해간 음식을 나눠먹은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급속도록 친해졌다.
그의 소탈한 성격의 때문인지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몇 번의 동출이 있고나서 비늘님은 낚시터 옆에 있는 낡은 농가를 사서 아예 낙향을 했다.
그렇게 셋이서 낚시를 다니다 포커와 촌사람을 만났다.
비늘님이 자꾸 나와 우리 님을 감방 동기들 이라고 놀리는 말을 듣고 있던
촌사람님과 포커님도 젊은 시절 감방동기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우리는 즉석에서 우리의 낚시모임 이름을 감방 동기들로 지었다.
한동안 이 이름은 우리 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포커님과 촌사람님은 삼십대 후반의 건장한 장정들이었다.
젊은 시절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이었다는 포커님과 잠시 조폭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촌사람님의 체격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줄만큼 컷지만 덩치와는 걸맞지 않게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 이었다.
우리 님은 우리들과 함께 있으면 남들이 자기가 조폭들 네 명한테 잡혀있는 인질인줄 알겠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친화력이 좋은 분위기 탓이었던지 주변에 사람들이 급속도로 모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늘 낚시를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우리는 정식으로 낚시카페를 만들고 조우회를 결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감방동기들이라는 이름을 쓰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카페 명을 검토하다 ‘도방 사람들’로 결정했다.
그 후 들어온 회원들은 비늘님이 우리들을 감방 동기라고 놀리면 그것이 초창기 멤버를 총칭하는 의미로 받아 드리고 있었다.
촌사람과 포커가 다가오자 비늘님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박어!.……. 짭새! 이것들이 되질라고…….”
촌사람이 비늘님의 팔을 잡고 장난스레 대꾸했다.
“왜 그러셔요. 제가 비늘님 드리려고 맛있는 것도 사왔는데.”
“뭔데.”
촌사람이 보조가방에서 족발을 꺼내더니 의기양양하게 내밀었다.
비늘님이 웃더니 촌사람을 장난스레 쥐어박았다.
“족발은 여기도 있거든.”
“어, 몬테님도 족발사오셨어요? 역시 몬테님은 저하고 취향이 비슷하세요.
완벽한 사람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닌까요.”
나는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자니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늘 마음을 닫아걸고 외로운 삶을 살았던 탓인지,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만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 모든 인연들이 낚시라는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나를 낚시터로 이끌어준 우리 님 늘 고마웠다.
처음 낚시를 배우면서 깊이 있는 사색과 자연과의 동화를 배웠고,
사람들과의 인연이 맺어지며 어울려 사는 삶을 배웠다.
그것은 나에게 모두 낯선 것들이었고 우리 님 나를 그런 삶속으로 인도해 주었다.
한바탕 흥겨운 술판이 끝나고 심야 타임을 노려보려고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소류지엔 정적이 흘렀다.
건너편에선 케미라이트 불빛만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수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두들 미끼를 새로 갈아주고 있었다.
나는 우리 님 미끼를 전부 교체한 후 다시 단절되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문득 이렇게 살아도 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살면 돼는 걸까요? 이렇게 사는 것이 그분이 말씀하신 삶이 맞는 걸까요?”
“몬테님! 단번에 얻을 수 없는 해답을 쉽게 구하려 하지 말아요.
그 해답은 죽기직전에 얻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영감처럼 얻을 수도 있을 거예요.
고민한다고 해서 찾아질 수 있는 해답이 아닌 거 같아요. 조급해 하지 말아요.
스님들이 하나의 화두를 깨닫기 위해 평생을 다 바친다고 하는데,
몬테님에겐 그게 평생을 통해 해답을 얻어야할 화두일 거예요.”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우리 님 고마워요.”
“아니 난 몬테님이 고마워요. 김 선생님에게 저도 큰 빛을 졌어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내 삶이 많이 흔들렸을 거예요.
그분이 제게 주신 창작지원금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삶을 살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분이 제게 주신 화두는 몬테님을 사람다운 삶을 살게 이끌어 주라는 것이 엇어요.
저는 몬테님을 보면서 제 빛은 갚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몬테님의 지금 모습을 그분이 보셨다면 많이 만족해 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더 깊이 생각해 줬으면 좋겠네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건너편 촌사람님 자리에서 붕어를 낚아 올리는 물 파장 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소리가 큰 것으로 보아 월척 급은 훨씬 더 되어 보였다.
짧은 외치는 촌사람의 목소리가 수면을 건너왔다.
“턱!”
나는 ‘축하’라고 짧게 대답했다.
“붕어가 나오기 시작하나 보네요. 좀 쪼아봐야 되겠네요. 우리님 고마워요.”
나는 우리 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로 돌아와 미끼를 싱싱한 새우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미끼를 전부 갈아주기도 전에 옆자리에서 붕어를 끄집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홉 치!”
우리 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 지며 미끼를 갈아주는 손놀림이 빨라지고 있었다.
붕어들이 먹이활동을 시작한 것인지 다시 촌사람님 자리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니 처음 잡은 턱걸이 월척보다 작은 붕어인 것 같았다.
그것이 우리의 규칙이었다. 자신이 잡은 붕어의 사이즈를 짧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기존에 잡은 붕어보다 더 큰 붕어를 잡은 사람이 짧게 사이즈를 외쳤다.
어둠속에서 건너편에서 얼마나 큰 붕어를 잡은 건 줄 몰라 핸드폰을 자주 걸다보니 생긴 규칙이었다.
가끔 붕어를 끄집어 올리는 소리는 들려왔지만 아직 삼십 센티 기록이 깨지지 않은 것 같았다.
조용하던 비늘님 자리에서 붕어가 끌려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늘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저수지 수면위로 울려 퍼졌다.
“삼십이!”
“와따! 뭔 붕어들 다 쫒아 버릴 일 있어요. 사짜 잡으면 천둥치겠네요. 남들 더 큰 붕어 못 잡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죠?”
아직까지 별다른 입질을 보지 못한 포커가 투덜거렸다. 다시 저수지엔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전방 뗏장수초 끝선에 던져 놓은 3.5칸 낚싯대의 찌불이 번쩍하고 신호를 보내왔다.
놈이 미끼를 건드린 것이다.
세포들이 일시에 움츠려 들듯 온몸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끔벅끔벅하고 예신이 계속되었다.
큰 새우를 끼워 놓은 탓에 한입에 삼키기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한참동안 본신으로 이어지질 못하고 찌불이 끔벅이는 예신만 계속되었다.
나는 낚싯대에 손을 올려 놓은 채 놈이 미끼를 삼키고 찌를 들어 올려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만은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비어버린듯 무념무상의 상태 속에 놓이곤 했다.
오직 케미컬라이트 찌불과 나만이 어두운 허공 속에 놓여 있는 듯 했다.
한참동안 애를 태우던 놈이 드디어 미끼를 삼킨 것인지 두 마디쯤 찌가 솟아오르더니 그대로 멈춰 섰다.
나는 숨을 죽인 체 다시 놈이 완전히 찌를 들어 올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찌는 더 이상 위로 솟지 않았고 서서히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전형적인 대물의 입질이었다.
내 기록어인 42센티 붕어도 지금과 같은 입질을 보였었다.
지저분한 예신 탓에 작은 붕어로 생각하고 풀렸던 온몸의 긴장감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서서히 옆으로 흐르던 찌가 물속으로 사선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강하게 챔질을 했다.
쉬이익’ 낚싯줄이 물을 가르는 소리가 어둠을 뚫고 수면위로 퍼져 나갔다.
낚싯대를 통해 놈의 강한 힘이 전달되어 왔다.
앞쪽에 뗏장수초들이 펼쳐져 있어 망설일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뗏장위로 놈을 들어 올리지 못하면 수초를 감아버릴 것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최대한 낚싯대를 치켜들고 놈을 수초위로 끄집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몬테님 커요!”
건너편에서 다급한 촌사람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 커!” 나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처음 강하게 힘을 쓰기에 사짜 급은 될 거라고 착각했지만, 처음 반항과는 달리 쉽게 놈이 제압이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은 놈인 거 같았다.
놈을 뗏장위에 올려 스키를 태워 견인해 왔다.
뗏장위에 올라온 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던 놈이 발밑까지 다가오더니 뗏장위에서 심하게 퍼덕 거렸다.
사이즈는 삼십칠팔 정도 되어 보였다.
그때였다. 놈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뗏장위에서 퍼덕일 때, 그 하얀어체가 달빛이 반사되어 은빛 비늘이 빛날 때,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졌다.
나에게 짓밟혀 달빛아래에서 몸부림치던 그녀의 그 나신이…….
갑자기 울분이 터져 나왔다. 내 안에서 참을 수 없는 절망이 밀려들었다.
나는 낚싯대를 놓아버리고 얼굴을 감싸 안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건너편에서 촌사람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붕어 견인을 도와주러 내 곁에 우리 님 와있었던지 바로 옆에서 우리 님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빠져버렸어.”
“상당히 큰거 같던데 잘 좀 하지.”
상황을 모르는 탓에 비늘님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은 체 어떻게든 눈물을 참아보려 했다.
하지만 내 어께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어께를 가볍게 토닥이는 우리 님 손길이 느껴졌다.
그는 내 어께를 두어 번 토닥이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
너무나 지우고 싶은 과거의 영상하나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떠올려 지며
내가 오랫동안 지키려고 했던 내 모든 평정을 무너트려 버리고 있었다.
나는 과거를 모두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내 머릿속엔 항상 몇 개의 영상이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이지 않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척 그것에서 벗어난 척 하고 있을 뿐, 그것들은 너무나 선명히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p.s 저수지의 그녀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탓에 후속작이 부담이 너무 많이 되네요.
몇번의 시작을 썻다 지웠다 하다가 않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대뽀로 시작해 봅니다.
일단 시작이니 댓글하고 추천 빵빵하게 좀 넣어 주세요. 아셨쥬.
2013 몬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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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8
행복한 시간 많이주시길 기대합니다.
너무 부담같지는 마시구요.
화이팅 하세요..
몬테..기대됩니다..우리님..화이팅^^
자자~~~보이시지요.... 이글을 보고 계시는 모든 분들이 힘들 보내드립니다..
화이팅~~~~^^
재미있고 기대가 큽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
후기작 많이기대됍니다~
붕어우리님 홧팅~~
다시한번 반갑습니다
추억의 조행기 코너를 기웃 거릴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잡 생각없이 몰입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님의 글이 좋습니다.
마음편히,천천히 써 내려가십시요
두달은 천천히 읽어 내려 갈테니까요.
반가운 마음에 추천 꾸욱 누릅니더!! ^^
제가 할일이 생겼네여
일하는중간 중간
아껴가며 읽겠읍니다
천천히.....
쓰세요
감사합니다
몬테도 많이 ~~기대됩니다.
2013몬테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