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 얼마 만에 떠올려 보는 이름인가?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가슴속에 그리움이 가득 채워지는 그 이름.
그녀는 나의 사랑이면서 가장 큰 아픔이었다.
그 하얀 얼굴과 커다란 눈망울, 잘록하던 허리선과 쭉뻗은 다리…….
나는 그녀의 모습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려 졌다.
그녀의 투명한 얼굴위로 비쳐들던 환한 햇살을 떠올려지며 가슴이 설레고
나도 모르게 입가엔 미소가 머금어 졌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나에게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고 옛 추억을 회상할 자격이 있는지 심한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그녀를 떠올리거나,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조차 얼마나 큰 죄인 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순백의 영혼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그녀를 이렇게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 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 상상 속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더구나 그 상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이미지와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견대내기 어려운 역겨움일 것이다.
나는 너무나 예기치 않은 순간 나를 점령하고 들어온 과거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애를 썼다.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과거의 영상들이 단편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나의 장면과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급히 다른 생각들로 그것들을 덮어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 영상들을 지워버리려 해도 그것들은 살아있는 생물들처럼
내 의지를 뚫고 다시 내 머릿속을 점령해 들어왔다.
나에게 선과 악이 공존하던 시절의 기억들이.
내 삶에 소희라는 존재가 있던 그 시절의 영상들이 자꾸만 꾸물꾸물 살아나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내 내면의 세계는 아직도 독기를 품지 못한 여린 마음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외부의 모습은 세상에 대한 반항과 독기에 가득 차 있었던 혼란스러웠던 그 십대후반의 영상들이
밝은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과 함께 너무나 또렷하게 그려졌다.
내 나이 열다섯.
구두닦기 부스에 앉아 그녀를 매일 그녀를 기다리던 소년의 가슴 설렘과 기쁨과 희열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녀가 구두닦이 부스가 보이는 길모퉁이 코너를 돌아설 때면 보지 않아도 느껴지던 그 예감과
숨조차 쉴 수 없는 긴장 너머로 들리던 그녀의 발자국 소리, 옷감들이 스치는 소리,
그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파동까지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가 내 옆을 지날 때면 훔쳐보던 그녀의 투명한 얼굴,
애절한 눈길로 그녀의 뒷모습을 쫒아가던 내 모습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더 이상, 더 이상 불시에 찾아온 그 영상들을 진행시켜서는 안 된다는 무의식 속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더 이상 그 영상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진행된다면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그 참혹했던 영상으로 변이되어 갈 것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건 막아야 했다.
구체적인 영상이 떠올려지기도 전에 내 심장은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고,
내 마음은 온통 불안감과 두려움에 일렁거렸다.
나는 애써 머릿속에 돌이 갓 지난 두 살배기 준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준구의 포근히 잠든 얼굴의 영상을 머릿속에 그려내며 내 머리속에
그 어떤 추악한 영상들도 침범하지 못할 성역을 구축해 나갔다.
엄마 품에 안겨 포근히 잠든 둘째 아들 준구의 모습과 그 앙증맞은 작은 손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젓냄새를 머릿속에 떠올리노라니 요동치던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혼날까봐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동생의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 볼을
슬쩍 만져보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다섯 살배기 준식의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 떠올려 졌다.
이렇게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노라니 내 머릿속에 급속도록 퍼져나가던 과거의 영상들과
가슴속의 일렁임 들이 모두 생명력을 상실하고 사라졌다.
나는 겨우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고즈넉한 소류지 수면위로 찌불들이 빛나고 있었다.
어둠속에 초록색으로 빛나는 그 불빛들만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삶이란 때론 모든 것을 어둠속에 묻어버리고,
내게 지금 소중한 것만을 저렇게 찌불처럼 빛나게 간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삶의 평화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사물이 햇살아래 모두 드러나 보이는 낮에는 아무리 낚시에 집중을 해보아도
찌의 움직임들을 다 읽어 낼 수 없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시야에 인식 되어 그 사물들 사이에게 내게 중요한 찌의 움직임만을
읽어 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물들이 어둠속에 묻히는 밤이 되면 조용한 수면위의 찌불과 나만이 존재했다.
그때가 되면 찌불의 미세한 흔들림까지 모두 읽어 낼 수가 있었다.
붕어가 근처에 접근했는지, 미끼를 건드려 보는지, 미끼를 슬쩍 삼켰다 뱉어내는지,
망설이던 붕어가 미끼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삼켰는지 찌의 미세한 움직임 속에서 모두 읽어 낼 수가 있었다.
어쩌면 낚시란 그런 과정들을 읽어내는 즐거움이었다.
그것처럼 현재의 나의 삶도 밤낚시와 같았다.
내가 살아왔던 과거의 삶과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 고려하다보면
결국 내가 집중해야 될 현재의 삶을 읽어내질 못한다.
모든 것을 다 묻어버린 저 어둠처럼 내 삶의 집중해야 할 부분들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마음속에서 놓아버려야만 한다.
그래야만 진실로 중요한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고,
삶의 평화와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찌불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묻어버린 과거의 영상들이 내 속에 살아날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과거의 고통과 좌절 속에서 벗어날 있으리라는 희망이 샘솟고 있었다.
그때 좌측 맨 끝에 던져놓은 4.0칸대의 찌불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붕어가 근처에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경계심 많은 놈이 미끼를 슬쩍 건드려 보는 것인지
찌의 상승은 없었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찌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놈은 미끼에 대한 탐욕에 가득차서 미끼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놈을 느끼며 놈이 미끼의 유혹에 넘어가 덥석 물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눈은 놈이 보이지 않는 먼 거리에서 찌를 보며 놈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고,
내 손은 방아쇠 위에 얹어진 손가락처럼 낚싯대의 매끄러운 촉감을 느끼며 챔질의 순간을 가름하고 있었다.
미동도 없는 기다림,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호흡마저 정제된 체 흔들리는 찌불을 바라보며 온몸의 감각들을 일깨우는 깊은 잠복,
놈은 결국 걸려들고 말 것이다.
놈은 본능이 부여한 예감으로 내 살기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꺼림칙한 느낌에 탐스런 미끼를 곁에 두고도 먹기를 망설이며 염탐하고 있을 것이다.
놈과 나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놈은 미끼를 슬쩍 물고 찌를 두 마디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것이 놈이 미끼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놈은 미끼에 도사린 위험이 있다면 그것이 작동해 주길 바라며 미끼의 가장자리를 물고 슬쩍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험은 초보조사들에게나 통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한껏 힘이 응집된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것이 놈이 바라는 것이다.
나는 놈의 유혹에 몇 번이고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지만
그 유혹을 떨쳐내며 놈이 방심하고 미끼를 꿀꺽 삼키게 될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놈의 시험은 계속되었다.
몇 번을 삼킬 듯 삼킬 듯하다 찌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는 했다.
낚싯대를 부여잡은 손에서는 땀이 배어났다.
계속되는 긴장감과 정지동작으로 온몸이 뻐근해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의 뜻대로 섣불리 챔질을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몇 번의 예신이 있은 후에 갑자기 찌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포착이 되질 않았다.
놈이 불쾌한 예감 때문에 미끼는 삼키는걸 포기하고 자리를 떠났을 수도 있었다.
조금 전의 예신 중 찌가 세 마디쯤 상승하던 그때 챗어야 하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후회보다는 놈이 지금 마지막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확신이 더 강하게 들었다.
놈은 내가 방심해 주기를 바라며 그곳을 떠난 듯 미동도 없이
미끼와 아주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시험이었다.
만약 놈이 그곳을 떠난 줄 알고 섣불리 몸을 움직이거나 미끼를 확인하기 위해
낚싯대를 들어 올리게 된다면 놈의 시험은 성공을 하는 것이고 나는 이승부에서 패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온몸에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놈을 기다렸다.
이제 놈과는 인내의 승부만이 남은 것이다.
놈이 더 길게 인내하느냐? 아니면 내가 확신을 가지고 더 길게 인내하느냐는 승부만이 남아 있었다.
놈의 인내는 다른 놈들에 비해 더 강했다.
십여 분이 지나도록 찌에서는 아무런 미동도 느껴지질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 자꾸만 확신이 무너져 내렸다.
미끼를 이미 따먹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놈이 멀리 떠나버린 것일까? 미끼를 확인하고 다시 끼워줄까?
이런 생각들이 자꾸만 내 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너무 긴 승부 호흡에 내 집중이 흩뜨려 졌다.
나는 잔뜩 긴장한 체 몸을 숙여 잡고 있던 낚싯대에서 조심스레 손을 거두고
몸을 일으켜 세워 의자에 소리 없이 몸을 기댔다.
긴 시간 온몸을 긴장시켰던 탓인지 몸이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몸에 긴장을 풀어 주고 다른 낚싯대의 찌불을 쭉 훑어 봤다.
다른 찌들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4.0칸대의 찌불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이미 찌불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놈과의 인내의 승부에서 내가 진 것이다.
급히 몸을 기울여 4.0칸대의 손잡이를 잡고 힘껏 챔질을 했다.
이미 기선을 제압당해버린 탓인지 대를 세우기가 버거웠다.
이미 고개를 저수지 중앙 쪽으로 돌리고 질주를 시작해버린 놈의 고개를
내 쪽으로 다시 돌리고 견인해 오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바늘이 주중이를 꿰뚫는 느낌을 받은 것인지 놈은 있는 힘을 다해 저수지 중앙부를 향해 내 달리고 있었다.
손으로 느껴지는 놈의 힘은 대단했다.
가끔 오짜급 붕어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었던 탓에 출조 전부터 기대감이 높았던 저수지였다.
옆에서 낚싯줄이 우는 소리를 들은 우리님이 놀래 뜰채를 들고 달려오고,
건너편에서는 “걸었다! 걸었어!”하는 탄성들이 들려왔지만 이미 나는 놈과의 승부에서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저수지 중앙부를 향해 내달리는 힘을 견디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낚싯대가 ‘툭’하고 긴장감을 상실했다.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승부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그렇게 놈과의 대결에서 나는 패배하고 말았다.
원줄 상단부가 터져버린 탓에 놈은 봉돌과 찌까지 모두 끄집고 가버렸다.
“소리가 장난이 아니던데. 아깝네.”
우리님이 곁에서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힘이 장난 아닌데요. 근데 챔질을 너무 늦게 하는 바람에 터져버렸네요.
낚시 다니면서 이런 힘은 처음이네요. 대단한 놈이네요.”
“옆에서 보니 대도 못세우더만, 대단한 놈이었나봐?”
“오짜가 나온다는 이야기 듣고 일부러 원줄도 4호 줄로 맺는데 그게 터져버리네요.
힘도 힘이지만 챔질 타이밍이 너무 늦었어요. 이미 끄집고 들어가는 것을 채는 바람에. 아깝네요.”
그때 건너편에서 포커님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잉어!”
옆에 있던 촌사람님이 퍼커님의 장단을 맞춰주며주며 외쳤다.
“가물치!”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계속 까불래? 뭔 잉어하고 가물치가 예신을 이십분씩 한데.”
내 외침에 잠시 정적이 감돌던 수면위로 비늘님의 두터운 음색이 울려왔다.
“글믄 빠가!”
“빠가! 정답이네. 정답.”
건너편에서 촌사람님과 포커님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여왔다.
곁에선 우리 님도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웃었지만 그 웃음으로 마음속에 이는 불안감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낚싯대에 잔뜩 가해지던 힘이 허망하게 ‘툭’하고 사라지는 순간
내 가슴속에 소중한 무엇인가가 사라져버린 듯 한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대물붕어를 놓쳐버린 상실감과는 다른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처럼 내게서 소중한 무엇인가가 떠나간 듯 한 상실감이었다.
그 느낌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 웃고 있어도 마음속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불안감을 지워보려 애를 썼지만 쉽지가 않았다.
한바탕 웃음이 잦아들고 대물붕어의 출현으로 모두들 낚시에 집중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한번 일기 시작한 그 불안감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열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아내가 잠자리에 들 시간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계속해서 벨이 울렸지만 아내는 핸드폰을 받지 않았다.
다시 집 전화로 전화를 걸었지만 집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아내가 샤워를 하고 있어 전화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열한시까지 다섯 번도 넘게 통화를 시도했지만 통화가 되질 않았다.
도저히 더 이상 치솓는 불안감을 견딜 수가 없어 늦은 시간이었지만 처갓집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건지 전화벨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장모님이 전화를 받았다.
“장모님 저 이 서방입니다.”
“그래 이 서방, 근데 밤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애들이라도 아퍼?”
장모님은 너무 늦은 시간의 전화를 받고 놀란 듯 했다.
“아니요. 집사람이 전화를 안 받기에 혹시 거기서 자는가 싶어서요?”
“아니, 낮에 왔다가 네 시쯤 갔는데.”
“그래요. 그러면 집에서 잠든 모양이네요. 밤늦게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주무셔요.”
“그러니까 이서방도 낚시 좀 그만 다니고 애들하고 안사람 좀 챙겨……. 근데 나도 저녁 먹고 전화를 했는데 안 받데.”
“그래요. 알았어요. 걱정하지 말고 주무셔요. 제가 통화해 볼게요.”
“알았네. 별일이야 있겠어. 엎어지면 코 닫을 거린데, 걱정 말게.”
“예 장모님.”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집과 아내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와의 통화가 되질 않았다.
나는 전화가 되지 않아 걱정되니 문자를 보는 대로 전화를 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아내가 깊이 잠이 들어서 전화를 받지 못할 거라고 내 자신을 위안하며 불안감에서 벗어나려고
찌불에 정신을 집중했지만, 한번 시작된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낚시터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 거리였다.
지금이라도 낚시를 걷어서 철수를 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아무 일도 아닌 일로 일행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싶지가 않아 철수를 포기했다.
건너편과 우리님 자리에서 몇 번의 물소리가 났지만 그리 큰 씨알이 아닌지 크기를 외치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내 자리에서도 아홉치급 한 마리와 여덟치급 붕어 두 마리가 올라왔지만
기대하고 있던 크기의 붕어가 아니라 별다른 감흥이 나질 않았다.
나는 낚시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조금 전의 그 불안감이 가시지 않아 낚시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삼십분쯤 지났을 때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아내의 전화일거라고 생각하고 황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전화는 장모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둠속에 화면이 밝혀지며 징징거리는 그 진동이 마치 내게 다가올 불길한 운명의 예감처럼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전화를 받았을 때 수화기 너머로 장모님의 불안에 휩싸인 음성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집에 왔는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현아가 않나와.”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큰소리로 불러봐도 아무런 대답이 없어. 혹시 현아가 다른데서 잔다거나 하진 않았나?”
돌 갓 지난 어린 애를 데리고 다른 곳에서 자거나,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최소한 늦거나 어떤 일이 있다면 내게 진작 전화를 했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인지 모를 일이지만, 제발 그것이 큰일이 아니기 만을 빌었다.
“4416 6636 번호 누르시고 샾버튼 누르세요. 안에서 잠겨 있는지, 문이 열리는지.”
“알았네.”
전화기 너머로 버튼을 누르는 소리와 문이 열리는 개폐 음이 들려왔다.
“열렸네. 열렸어.”
전화기 너머로 현관문 여닫는 소리와 아내를 부르는 장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서 현관문이 잠기지 않은 것을 보니 아내가 집에 없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장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서방, 아무도 없어. 잘 생각해봐 어딘 간다고 하지 않았어?”
“예. 애들 데리고 어딜 갔겠어요. 일단 제가 집으로 갈 테니깐 장모님이 집사람이 갈만한 곳에 전화 좀 해보세요.
처남댁 말고는 갈만한 곳도 없어요. 일단 출발할게요.”
전화를 끊고 나자 내 전화통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지 우리 님이 곁에 와 있었고
저수지 제방을 타고 후레쉬 불빛이 넘어오는 것이 보였다.
“왜 무슨 일이야?”
우리 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집사람이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애들 데리고 이렇게 늦게까지 다른 곳에 있을 일도 없을 것 같고 걱정이 되네요.”
“제수씨가 아무 연락도 없이 지금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 일이 없어 보이는데. 걱정이 되긴 하네.”
“다른 분들한테는 심각하게 말씀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 지금 출발해야 될 것 같아요.
낚시 좀 걷어주세요. 그리고 제가 연락드릴게요.”
“급하더라도 차 운전 조심히 해.”
“예. 알았어요. 바로 연락드릴게요.”
나는 우리 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벗어났다.
차 있는 곳으로 나오니 건너편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걸어 오는 게 보였다.
마음이 다급해서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나는 차를 몰고 그들 곁을 스치며 창문을 열었다.
“저 집에 좀 다녀올게요.”
나는 인사를 건네고는 그들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그대로 차를 몰고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런 불빛이 보이지 않는 저수지를 제방 길을 넘으면서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공포가 밀려들었다.
그것은 내 삶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였다.
p.s 독자분들이 다 어디 가버리셨나 보네요.
다시 시작했어요. 어서들 오셔요....ㅋㅋㅋ
2013 몬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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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2
좋은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항상읽기만하고 그냥나갔는데 제가1번이네요.추천 만땅 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님의 글을 얌체처럼 즐겨 훔쳐봤지만
한 번도 감사의 마음 표시한 댓글 단적이 없었습니다.
이 번에도 댓글 달지 않으면 제가 너무 이기적이고 너무 도둑심보일 것 같아서
감사의 마음 가득 담은 댓글 답니다.
내면의 교차하는 갈등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님의 글 솜씨에
진심으로 감탄을 하게 되네요
그리고 여느 문필가 못지 않은 수려한 문장력 또한 찬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님의 글이 올라 오기를 기다리는 즐거움과
글 속에서 저희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어김없이 주시는
붕어우리님의 배려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힘내세요... !!!
이렇게 귀한 시간내셔서 글을 올리셨는데
독자님들이 휴가가셨나?? ㅎㅎㅎ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두 빠져드네여~~33~~ㅎㅎ
항상 끝에는 다음편이 궁금하게 만드십니다.
더운여름에 붕어우리3님 덕분에 시원하게 보낼거 같은 예감이 드네요...
앞르로 흥미진진한 스토리 부탁합니다..
더운 날씨에 수고 고맙습니다..
다아는분들이라...좋네여
역시비늘님 얼굴은........짱입니다여
행님
붕어와낚시꾼과의
미묘한신경전 글표현
대단하십니다
깔짝...깔짝
그리고 두마디..살짝올리고...감감
이부분에 항상
저는 붕어한테 .....참패를 당하는데
담에는
한번 이겨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