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로운 4월의 세 번 째 밤을 보내고 수정같이 맑은 네 번 째 휴일 아침과
그리고 내일이면 "더 푸른산 " 그 "식목의날"을 또 맞습니다.
지난 가을과 겨울.
산짐승 특히 "야생멧돼지"가 농가및 서울의 주택가에 심심치 않게 출몰했다는 소식을
접할때 마다 놀란가슴 쓸어 내리기도 하였답니다.
간혹 지방의 국도를 달리다 보면 야생의 산 짐승들의 사체를 이따금씩 볼수가 있었고
"노루"며 "고라니" 심지어는 "멧돼지" 까지 차에 치어 생을 마감한 뉴스를 볼때마다
안타까운 마음 여러분들도 동감이시겠지요.
하지만 요즘엔 도로를 만들때 동물들의 이동 통로를 만들어 동물이 자주 출연하는 곳엔
커다란 동물 그림과 함께 위험 "표지판"도 설치해 놓은것을 여러분들도 보셨는지요.
여러분들도 다들 아시겠지만 4 ~ 50여년전...
제가 어려을때만 해도 6.25전쟁이 끝난 대한민국은 산업시설은 물론이요 궁핍의 연속 그 자체였습니다.
제 기억으론 아마도 60년대 중반(?)까지 "나무땔감"을 실은 "소달구지"를 심심치 않게 봤으니 말입니다.
지금의 서울 서대문구의 "무학재"고개를 힘겹게 넘은 "소달구지"의 "장작땔감"이 어느 집에 팔려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땔감"으로 팔리고 잘려나간 산들은 나무 한그루 온전하게 없는 온통 씨벌건 몸퉁아리을 초라하게 들어난 "민둥산"뿐...
그렇게 헐 벗은 산에 무슨 "산짐승"들이 있었겠습니까?
사실 1950년대 우리나라의 산림의 최악이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수탈.그리고 6.25. 각 가정마다 마땅한 연료가 없으니 산에 있는 나무를 겨울철 땔감으로
"야금야금" 베어냈고 또 쓸만한 나무들은 집 짓는 기둥으로 베어내곤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정희대통령"의 치적을 우선순위를 꼽는다면 당연 "산림녹화"를 꼽고 싶습니다.
학창시절인 60년대와 70년대에는 "치산녹화 사업" 이 꽤나 할발했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동원"되여 "산림녹화"현장에도 있었고 해마다 "송충이"가 기승을 부리는 6월 쯤 이면
빈 "깡통"이나 "나무젖가락" 아니면 "비닐봉지"를 들고 그 징그러운 "해충"을 잡으로 산으로 들로 헤메곤 했습니다.
요즘에 젊은 사람들은 저토록 숲들이 우거진 까닭을 알기나 알까요???
이젠 삶의 성장을 피부로 느끼면서 어느날 산에 오르고 보면 가까이에서 "메아리"가 머문 듯 소리를 하고 있고
오냐!! 내새끼 니가 이만큼 컸구나!! 하고 훌적 커버린 손주키에 새삼 놀라워하는 할머니처럼 "새록새록"
몰라보게 푸르러진 산내음에 찬성를 쏟게 됩니다.
※ 우리나라의 "산림녹화"는 전세계를 통틀어 나라전체가 헐벗었다가 성공적으로 복원된 첫 사례로 꼽힌답니다.
미국의 환경분야 전문가인 "레브터 브라운"은 "지구환경"보고서라고 할수 있는 그의 저서 <플랜 B 2.0> 에서
"한국"의 "산림녹화"는 세계적인 성공사례로서 우리도 "한국"처럼 "지구"를 다시 푸르게 만들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식목"못지 않게 나무기르는 정성을 기르기위해 "육림의 날"을 재정하는등 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한곳으로
묶었기때문이고 우리의 산야는 푸른색으로 살아 숨쉬는 자연의 "정원"으로 탈 바꿈해 이제 울창한 수목.
그 숲에서 "산림욕"까지 돈을 지불하고 즐기는 오늘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과거엔 "홍수"와 "자연재해"를 줄이고자 수종에 관계없이 무조건 식목을 했으나
이제는 "간벌"을 통해 "경제림"을 심어 "자원부국"으로 한발짝 더 나가려고 정부에서 많은 힘을 쏟는다고 합니다.
사실 나무심는 "식목행사"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고 하나 1911년 일제치하에선 4월3일을 "식목일"로 정했고
1945년 광복이후 4월5일로 제정한것이 오늘어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젠 "공휴일"이 아닌 기념이이 된 것이 우리꾼들에겐 아쉽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나무 한 그루 더 심어
후대에 더 푸른 산을 물려준다면 더 말할 나위는 없겠지요.
여러분 터에 도착하여 낚싯대를 거치 후 흐르는 땀을 흠치며 앞에 펼처지는 푸르는 자연이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산불조심"하여 고생으로 가꿔온 푸르른 산야를 후대에 자랑스럽게 물려줍시다.
♬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 언~제~나 찿아와서 외쳐부르면♪
♪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___________^*
그때 그 시절...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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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산소가 느껴집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방공사 부역하러 다시셨지요.
송충이 깡통에 잡아서 학교 가져갔고,쥐꼬리도...
학교에서는 난로용 땔감으로 사용된 젖은 탄 불살개용으로 솔방울 땄고,
집에가면 나무하러 뒷산에...
솔잎 떨어진 갈비 갈쿠리로 긁어모아 동이만들어 지고 내려오고..
권형님 말씀대로 그 때 나무심기가 지금의 푸르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사방공사에 제일 많이 심은 묘목이 아카시아,오리나무....
번식력과 뿌리내리기가 좋아서 선택이라 벌거숭이 산이 무너져 내림은 방지 했어도
경제목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과다번식으로 인근 소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권형님 덕분에
식목에 대한 그 때 그시절을 생각해 봅니다.
권형님 안녕하시죠?
미느린 이번주말은 업무가 바빠서 출조를 못했더니
벌써 낚수금단현상이 옵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꼬 싶고 누우면 잠들고(?) 싶은~
주중에 시간내서 비륀내나는 물가를 함 댕겨와야 되겠슴미더~ㅎ
예추억은 감미롭습니다.
송충이 잡으러 국민핵교 시절에 많이 다녀습니다.
60년대 중순 경에는 산이 전부 민둥산 이지요.
지금은 엄청난 변화 입니다.
그때 그시절이 맞습니다.
그 시절 심었던 아카시아가 너무 숲을 지배하고 있어
한동안 소나무를 비롯한 다른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여 문제가 있다는 말씀들이 많았는데,
요즈음은 숲의 세력을 다른 나무에게 넘겨주고 있다 합니다. 무슨 원인인지 스스로 개체수도 줄아들고 있고요.
50년 넘게 나름대로 지키고, 숲의 비옥함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되었고 더구나 꿀 공급에는 없어서는 안 될 나무라 합니다.
영봉업자들은 봄이면 아카시아 꽃을 따라 북상하는 초록을 따라 함께 벌을 싣고 이동하기도 하지요.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 낚시 가장 잘되는 무렵이라는 물가에서 만난 고수 이야기가 생각 납니다.
올해도 아카시아 꽃이 피겠지요. 배고플 때 따 먹기도 했는데...
하 수상한 봄이 오더니 산수유 개나리 목련이 한꺼번에 펴있더군요.
저도 늘 같은생각을하고 있던차라 글을 읽으니 반갑군요.
예전의 민둥산과 붉은산을보며 송충이잡던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로 격세지감이 생각나는군요..
건강하시고 즐낚하시기를..
학교 끝나고 갈퀴들고 앞산에가 솔잎긁고 칡부리캐고 ..
겨울엔 가끔 추위에 얼어죽은 비들기나 꿩도 줏고 ..
선배님의 글에서 자주 소시적 기억을 더듬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