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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51(연탄의 추억)

지난 "수요일"엔 몇 안되는 직원들과 "회식"을 했습니다. 이 계절에 잘 어울린다며 찿아간곳이 "고추장 삼결살" 포장마차. 말이 "포장마차"지 아주 "기업형(?)인것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드럼통을 개조하여 만든 둥근 원탁의 "연탄화덕". 그 "연탄"에서 풍기는 매케한 까스냄새가 코끝이 찡한게...머리까지... 숨쉬기가 곤란한 정도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속이 메스꺼운게... "연탄"... 참!! 예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연탄". 오늘은 "월"님들도 기억이 생생한 "연탄"의 추억을 함께 하겠습니다. 혹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전 "장작 아궁이"의 추억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주 어렸을땐 "지게"에 "연탄"을 찍는 "틀"과 "떡뫼" 비슷한 "박달나무"로 만든 "나무망치"를 가지고 "연탄"을 전문적으로 찍어주는 "업자"(?)가 다니곤 했습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시작 될 쯤. "황도흙"과 "가루탄(분탄)"을 마당에 부어놓으면 "연탄"찍는 업자를 불러들여 그것들을 물로 적당이 석어 마당 가득히 연탄을 찍어 말리곤 했으며 그것을 때며 겨울을 났습니다. 당시 서울에도 "장작"을 때는 집들이 물론 있었지요. "서대문"밖 "무학재"를 "소달구지"에 장작을 가득 싣고 서울로 들어오던 때였으니까요. 지금도 기억이 나는건 댓발이나 되는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여 둘둘말아 어께에 메고 한쪽엔 커다란 징을 치며 "굴뚝쑤셔~~"하며 다니던분들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나라에서 "난방용"으로 "연탄"이 사용되기 시작한것은 19세기 말이였는데 "연탄"은 냄새가 심하고 연기가 많이 났지만 값이 싸다는 잇점 때문에 당시에도 가난한 사람들에겐 환영을 받았다 합니다. 1930년대엔"구공탄"이 "연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였으며 구멍이 많을수록 화력이 좋고 불이 잘 붙고 꺼지지 않는다 하여 출시된것이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19공탄.22공탄 25공탄... 혹!! "레일"식 "연탄화덕"을 기억하시는지요?? "연탄"화로를 레일을 따라 넣다 뺏다하는식 즉 "취사"와 "난방"을 겸할수있도록 하는... 예전 서울의 "아파트"가 다 "레일"식 "연탄화덕"을 썼습니다. "연탄까스"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이 아까운 목숨이 하루에 한명꼴이 였으니 말입니다. 가족들이 모두 죽었네...어쩻네 하며 신문이 맨 앞장을 장식하곤 했습니다. "아궁이"만 고치고 "구들장"을 그대로 둔 것이 큰 화근이였지요. 그 "연탄"들 때문에 이나라 이강토를 푸르게 푸르게 일조한것에 대해선 의견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도 ""연탄"을 필요로 한곳이 있으시겠죠. 군 시절... "연탄가루(분탄)와 "황토"를 물로 적당이 개여 "페치카" 방열판"을 뻘것게 달구던 그때가 생각 나는 "초겨울"밤이 깊어만 갑니다. 지난 "그때 그시절"...50(추억)에 추억을 공감하시고 댓글로 용기를 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_____^*

연탄가스...
큰누나가 안방까지 기어가지 못했다면
우리 삼남매 줄초상 치를뻔 했던 아찔한 기억이...

연탄불 꺼트리면 보리타작 했던 어무이가 떠오르네요...
이젠 혼날래야 혼날수가 없지만...
설을 며칠 앞둔 70년대 초.
엄동설한 기나긴 섯달 밤에 몹시도 소변이 마려워 큰애는
초저녁 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무릎까지 쌓인 마당을 가로질러 화장실에 갑니다.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손가락이 쩍 달라 붙는 순간!
....
등이 차가워 일어납니다.
사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 때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기어서 마루에서 쓰러집니다.
이 쿵하는 소리에 아버지께서 깨어나시고 가족은 혼비백산 연탄까스 중독에 난리가 났습니다.
얼음이 버석거리는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리는데,
양친은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동생들을 껴안고 흔들어댑니다.

3일이 지나서 동생들이 퇴원하고 가족은 평온을 찾았던 아찔했던 기억이.....

자다 일어나 연탄불 갈고.....눈물나도록 처절했던 어린시절!
그래도 따뜻한 연탄불이 그립습니다.
상도연탄갈비....
어린시절이 생각나고 곁들여 고항생각이나서...
그곳에 가끔 들리지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서민의 삶, 연탄...

치솟는 기름값을 감담못해 촌 노모도 몇해전에 연탄보일러를 놓았네요...


해마다 오르는 연탄값이 한장에 무려 450원이라고 후덜덜...

게다가 '연탄재종량재봉투'가 뭔말이라며 투덜투덜...


갈수록 팍팍해지는 서민의 애환을 우야꼬...
어릴적 하꼬방에서 생활할때.....
아마도 57년도 겨울이지싶네요.
한방에 7남매가 자다가 가스에 중독되어서 작은형일 일어나다가 벽에부디치면서 앞 치아가 반동가리 나는바람에
식구들이 일어나는 바람에 무두 살아습니다.^^*
67년도 서울 처음 올라가니 서대문 형무소앞 아현동 고개길에서 해질무렵 사람들이 사진에서처럼
연탄을 새끼줄에 들고오는것 처음으로 봐습니다.
부산은 저렇게 들고다니지 안커던요.^^*
연탄하면 양념 돼지갈비 적새에 굽어먹는것이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ㅋㅋ
지금 야생화 하우스 연탄 난로 피웁니다.

가끔 연탄불 끄집어 내어 삼겹살 구워 먹습니다.

어린시절 저는 나무장작 밖에 몰랐습니다.

연탄의 아련한 추억은 없네요 ㅎㅎ
아직도 연탄 보일러 사용하는 1인 입니다
연탄이 관리하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가격 저렴하고
고구마 감자 밤을 구어 먹을수도 있고 아주 좋습니다
80만원 이면 1년 걱정 없이 사용하고
연탄재는 하우스에 토양 개량용으로 사용하고
다목적으로 좋은데 귀찮은게 흠이지요 ㅎㅎ
연탄 종량제 봉투가 있는것은 처음 들었네요
우린 그냥 모았다가 하우스에 버리고 로터리 치는데
연탄 종량제 봉투는 너무한것 같습니다
반환점을 돌았으니, 출발한 곳으로 다시 뛰어 가시지요.
100회 까지 49회 남았네 뭐.

구공탄. 연탄가스에 사람이 일을 당하면 꼬박 꼬박 신문에 나던 시절이 있었지요.
동김치 국물, 식초가 특효라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군대간 아이들도 뻬치카가 뭔지 모르던데요.
어릴때 집나가 서울 어느 골목에서 내다버린 연탄재를 부여안고
밤을 새던 ..
무지 개구쟁이였나 봅니다
멀쩡한 집놔두고 열두살에 집나가 떠돌아 다녔으니
연탄 하면 생각나는것이 연탄가스 이겠지요.

6~70년대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참말로 많앗지요.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땔감이지만 잘못하면 위험한 연탄"

지금도 고기를 구워먹을때는 연탄화덕에서 먹는것하고 가스로 고기판에 구워먹는 고기맛 하고는 엄청난 고기맛에 차이가 나지요.

요즘도 가끔 적세에 연탄에 고기를 굽는곳 맛이일품입니다.

연탄"하면 우리나라가 없는 시절이 생각납니다.

건강을 기원 합니다.
한장이면 하룻밤 거뜬히 보낼 수 있고,

방 식을까.. 담요나 이불을 깔아 두고

손님들 오시면 구들장 아랫목에 제일 따뜻한 자리를 내 드렸지요.

(거기에 알루미늄 밥통도 묻어 두고요)
저희 본가에도 기름보일러에서 연탄보일로 바꿨죠..
모친께서는 좀 귀찬기는 하지만 매우 만족하십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니깐요..ㅋㅋ
작년엔 450~500장이면 한겨울 보내셨다네요..
권형님 건강하세요..
연탄은 서민적이면서도 참 아픈기억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머니머니해도

연탄불에 구워먹는 석쇠갈비, 석쇠고등어구이...묵고잡다
시골에 아직 연탄을 쓰고있네요

옛날 방식은 아니구 기름보일러랑 같은 방식으로 설계가 되어있구

연료만 연탄을 태우는 방식이라 연탄가스 걱정은 없지요

난로도 연탄난로 쓰시는데 기름난로 전기난로 사다드리면 죄다 창고행입니다 ㅎㅎ
연탄만보면 안좋은기역이....

연탄가스땜에 80년대초에집두채날렸읍니다..
군생활때 페치카 당번하던 동기가 생각나네요

평택 진위가 고향인 강선규 라는 친구인데

선임한테 엉겨붙어 우리동기 8명 죽을만큼 맞은적있죠

지나고나니 추억으로남네요 75연대 달구지로 근무했던 친구들 혹시라도

이글보면 연락바랍니다.
권형님

날씨가 추월지면 항상난방에신경이쓰입니다

우린아직도 가게에는 연탄을피웁니다 벌써한달다되어가구요

난방에는 연탄이제일싸게들고 따뜻합니다

옛적에도 연탄을많이뗏는데 아직도 연탄을때니

난방에는 아주좋은것입니다

언제한번보니 밀양광태기낚시터에 연탄아궁이만들어 장박하는 낚시꾼도 있었읍니다

추운날씨에 항상건강하시고 좋은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권형님 잘 계시지요..언제 섹스폰 연주도 들어보아야 하는데요..

52탄이 기대되네요.. 그때 그시절...^^
연탄하면 생각나는건 까스로 2번이나 저승문턱에서

살아난거^^
83년 여름 친한 친구녀석을 연탄까스로 잃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연탄가스로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친구를 벽제 공동묘지에 묻고 돌아오다

구파발근처에서 신호대기중에 레코드 가게에서 들었던

당시에 한참 유행하던 허영란의 날개......

가사가 친구녀석에게 하는말 같아서 잊혀지지 않네요

지금도 날개만 들으면 친구가 생각납니다



[날개/허영란]

일어나라 아이야 다시한번 걸어라
뛰어라 젊은이여 꿈을 안고 뛰어라

날아라 날아라 고뇌찬 인생이여
일어나 뛰어라 눕지말고 날아라

어느 누가 청춘을 흘러가는 물이라했나
어느 누가 떠도는 구름이라 했나

날아라 날아라 고뇌찬 인생이여
일어나 뛰어라 눕지말고 뛰어라

어느 누가 청춘을 흘러가는 물이라 했나
어느 누가 인생을 떠도는 구름이라 했나
권형님의 추억깃든 글보면..늘 과거로 여행을 떠납니다.^^

오늘 추운데..왠지 까스보일라보다 더 따뜻할거 같은 연탄불입니다.

또...요즘 울 동네에 연탄불에 갈비구어먹는 고기집이 생겼는데 정말 그 맛이 죽이더라구요.ㅎㅎ
요앞전 여름에 연탄 10장을 삿었습니다

용도는 말릴수도 없는 그무었을 말리려

삿다가 누우런 옹기화덕과 함께 가게앞에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습니다...


지금 그연탄은 우리 가게와 하등에 관계가 없지만

미관상 에도 좋지않는 연탄을 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오천원치도 안되는 그무었이 발길을 붙잡아 두고 있네요

전봇대 옆에 필요한분이 있을까 싶어 내일은 치워야 겠네요

권형님 덕분에 내일 가게앞이 깨끗해 보이지 싶습니다

파아란 큰바구니에 담겨 있었는데...
연탄하면 생각나는것...

기름값이 비싸서 시골집에 연탄보일러로 ....

가끔 한번씩 들리면

꼭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구워먹고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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