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하신 아버지 엄청 낚시 좋아하셨다.
매주말이면 어김없이 낚시를 다니셨다.
내가 낚시를 시작한지는 아마 걷기 시작하면서 한것같다.
어렴붓이 기억이 아버지가 좋아 무더위에도, 한겨울 어름낚시에도 따라 다녔던것같다.
중학생이 되자 머리컷다고 아버지를 따라 다니지 않았다.
그러면서 낚시도 그만두고.....
지금 생각하면 엄청 후회된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아들 그런 아들이 좋았던 아버지인데
중학생 사춘기에 접어들더니 컷다고 친구들이랑 놀러다니기 바빳으니
아버지 내심 서운했을것이다.
영원히 사실것 같던 아버지는 2008년 이 아들손 잡고 병원에 가신다.
그때 연세가 78세
딱히 어디가 아프신것 보다
기력이 없으셔서 병원에 몇일 입원해 기력찾으려 갔다.
"아버지 요번 몇일 입원해 기력 찾으시면 저와 낚시가요"
"그래 가자 오랬만에 아들이랑 낚시가자"
무지 좋아하셨다.
그런데 3일만에 급격히 않좋아지셔서 3일을 더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멀리 가셨다.
이북분 이시다 보니 혼자 월남 하셔서
가족 이라고는 친척도 없이
엄마, 아버지, 누나, 매형, 외조카, 나, 마누라, 쌍둥이, 동생, 제수씨, 친조카
딱 연필 한타스 12명이다.
어떻게 치룬지도 모르게 아버님을 산소에 모시고 유품을 정리하는데
지하 차고에 9자짜리 장으로 낚시대 및 장비가 한가득이다.
민물낚시, 바다낚시, 견지 낚시, 루어낚시, 어름낚시 없는 장르 없이 다 있다.
아버니 평소 다니시던 낚시가게 조우회에 연락해 회원분들께 나누어 드렸다.
그리 정리하던중 초록색 낚시가방이 눈에 뛴다.
초등학교 3학년때 1975년때 아버지가 이 아들 낚시대라고
초록가방에 2칸, 2칸반 3칸 낚시대를 주신 기억이 났다.
그것을 낚시 안다니는 아들것 이지만 간직해 오셨던 것이다.
한동안 지하차고에 쭈그려 안자 멍하게 담배만 피워 물었다.
그가방과 조우회 회원들이 다 가져가고 남은 어름낚시 장비만 남았다.
1년 2년이 지나 2010년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를갔다.
집 가까운곳에 낚시터가 있어
34년만에 초록 가방을 어깨에 매고 낚시를 갔다.
34년만에 펴본 낚시대와 낚시줄 찌 다 멀쩡하다.
아버지는 장비 정비하면서 이 아들놈 것도 정비 하신듯하다.
낚시대는 아주오래된 그라스대, 봉돌은 납덩어리 뺀찌로 누른것이며 찌는 갈대찌에 튜브탑에 형관테입 있는것, 찌고무는 노란 튜브고무
옆에 조사님이 힐끔 거린다.
"요즘 그런 낚시대, 채비 안쓰는데"
그때부터 낚시를 다시 시작해
이제 내가 매주 아니 일주일에 두세번 낚시를 다닌다.
초록가방과 낚시대는 지난 설전 최전방에 간부하사로 근무하는 아들놈이 낚시하고 싶다해 가방과 낚시대 사연을 이야기하고 전해주었다.
물론 요즘장비 일체와 함께......
아버지와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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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전부 가슴찡한 글을 올리시는지,,,,,
낚시란게 이렇게 3대를 이어주는 끈 같은것이 될수도 있다는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아드님께서도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바르고 건강한 젊은이 일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제 아들놈은 하사 전역하고
이제 취업해서 일주일 후에 나의품을 떠납니다
바다루어낚시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같이 할 기회는 많이 없었지만 이번 주말에
내가 데리고 가는 마지막 낚시를 계획중입니다
연배도 저랑 비슷한분 같으신데
추억은 가슴속에 묻어두고 좋은 일들만 있기를
기원 합니다
내리는 봄비마져 아련하구요
덕분에 아버지 생각해 봅니다.
눈물 숨기려 밖으로 나가야겠네요
울 아부지 생각납니다 낚시를 좋아하셨는데
단 한번도 함께해드리지 못했어요
저도 철없었던 어린시절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을 훔치게됩니다
1978년 여름즈음 대전역 앞에서 친구5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 뭔가모를
초라해 보이는 아버지가 아들이라고 반가워
아는체를 하시는데
어린마음에 친구들 앞에 창피해
모른체햇던 ᆢ ㅠㅠ
지금까지도 죄송하고 아버지 마음에 못을
박은것 같아 내내 마음이 아프기만합니다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제가 잘못햇읍니다
담배 한모금 깊이 삼켜야겟네요ㅠ
저도 어릴때 참 아버지랑 낚시 많이 다녔는데
지금은 돌아 가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