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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하는 미늘(잉어를 파실수 있겠어요?) 4

어둠이 오기 전에 미리 저녁 식사의 요식행위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펠에 물을 붓고 버너에 불을 붙였다. 물에 담가 놓은 김치통을 열고 손으로 김치를 꺼내 담고 고춧가루가 묻은 손을 씻었다. 김치 그릇을 들고 언덕을 오르는데 저수지를 돌아 차 쪽으로 향하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남자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할 잉어 봉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여자도 달랑 핸드백만 메고는 빈손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보이지 않던 곡진 저수지 부분에서 잉어를 돌려보냈단 말인가? 그럼 약에 사용한다는 건 둘러대기 위한 소리이고 잉어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내게는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사람의 신의에 대한 묘한 배신감과 타인의 억지에 의해서 돈에 눈이 먼 남자가 된 자신이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차 문이 열리고 여자가 먼저 탑승한 후, 남자가 운전석으로 오르며 허리를 굽히는 자세에서 승용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승용차는 약간 후진을 하다가 앞바퀴를 길 중앙으로 옮긴 후, 꽁무니에 연기를 내며 무너미 아래로 사라져 갔다. 억울한 마음과 바로 사람의 면전에서 나누던 대화가 마른 낙엽이 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믿음과 배신감의 교차? 그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여기까지 유랑하게 된 그저 내 주위를 맴도는 작은 일상의 업보라고 생각을 하자. 엄지손가락 굵기의 새우 미끼에 긴 기다림 속에 들어온 황홀한 입질에 마른침을 삼키며 챔질을 했다. 낚싯대를 세워 보지도 못하고 수면 위에 지느러미만 보이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허공에 튕겨 힘없이 올라오던 목줄에 달린 부러진 낚시 바늘도 내 굳건한 믿음의 작은 배신이었다. 버너가 열을 가하고 코펠은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 작은 알루미늄의 공간 속에 무수한 고뇌의 함성을 들으며, 라면을 반쯤 자르고 다시 조각난 라면을 이등분해서 끓는 물 속에 넣었다. 건조된 실파가 작은 폭풍우 속에 춤을 추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저으며 배를 채우기 위한 요식행위를 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캔 맥주 한 통을 들고 텐트 옆에 주차된 차문을 열었다. 창문의 틈을 약간씩 두고 주차를 했는데도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시동을 걸고 차 문을 모두 내린 채 에어컨 스위치를 눌렀다. 습기 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계 바람을 타고 진하게 후각을 자극해 왔다. 갑자기 사람이 그리워졌다.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장마가 북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어 트로트 음악이 흘러 나왔다. 트로트 음악은 가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서 좋다. 곰팡이 냄새가 가시자 창문을 모두 올렸다. 룸미러에 한 달여 만에 비쳐진 내 모습은 길게 자란 턱수염, 검게 그은 얼굴, 툭박한 원시인이었다.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히고 몸을 뉘였다. 비스듬한 자세에서 캔 맥주 꼭지를 잡고 손가락에 힘을 가하자 거품이 보글거리며 구멍 사이로 올라왔다. 원시인은 입술을 갖다 붙이고 있었다. 한 모금을 가득 입에 머금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또다시 이어지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 갈길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져 비에 젖어 우네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의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의 상처 잊을 길 없네 빗소리도 흐느끼네." 여자 가수의 애절한 사연이 묻어 뚝뚝 떨어지는 환영을 느끼면서 라디오 버튼을 눌러 껐다. 조용함을 느끼며 사람의 따뜻한 체온과 정담이 있는 대화가 불현듯이 생각났다. 그래, 마음의 상처 때문에 처자식 곁을 떠나 모든 걸 훌훌 털어 버리려고 낚시행각을 도피 방편으로 삼아 떠나오지 않았던가? 가정에 있어서의 여자의 남편, 그리고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 아비로서 모든 걸 던지고 그렇게 내가 모질게 훌쩍 떠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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