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박사님!
지석입니다. 소식을 접하지 못한 시간, 시간의 변화 속에 웅크린 단절은 차단된 벽 앞에서 타성에 젖어 소중함 조차 잊고 지낸 많은 것을 되돌아 보게하는 기회가 되었고 저에 대한 염려와 노파심을 혹여나 갖고 계신다면 거두어 주십시오
제 삶의 주춧돌이자 버팀목으로 박사님은 언제나 계단 아래도, 비탈길에도, 더 넓게 펼쳐진 초원 위에도, 어두워 보이지 않아 주저하며 망설이기도 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 한 가운데도 진득하게 기다리는 법과 의지를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한 열정과 강단이 혈기만 앞세운 제 삶을 오뚜기처럼 넘어져도 바로세워 정밀하게 다듬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처한 현실은 불운도 아니고 또 다시 이와 같은 선택의 갈림길이 주어질지라도 저는 제 전부를 걸거라는 것을 이제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우리의 가치는 그 모든 것을 앞서고 검증을 통해 확신을 얻어야 한다는 박사님의 가르침을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비분강개와 체념이 번갈아 오는 동안 이곳 한 평 남짓한 독방에서 번잡한 마음의 갈등을 내려 놓고 밀려드는 자조섞인 푸념조차도 제 삶을 채우는 양분으로 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깥세상에서 박사님과 저를 무너뜨린다 해도 들꽃처럼 몸을 내주고 기꺼이 산화하리라는 다짐 또한 변함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 흔들어 대는 무심한 세월이 못내 아쉬울 땐 종교를 가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위안과 평화를 얻는 길이 진리라 한다면 진리는 우리가 발견해 내야만 되는 실험실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피안의 세계를 꿈꾸게 된 것이 감시와 억류된 몸 때문만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절*에서 번뇌를 다스리지 못한 것을 그래서 조금은 후회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기 위해서는, 제 남은 앞으로의 날엔 부처님이 가르치신 무상의 여백과 자비와 순응을 제 삶 속에 녹여 해탈의 경지를 이루고 싶습니다.
혹여라도 저의 안위와 제 부모님에 대한 걱정은 옹이와 같아서 그 상처에 대해 박사님마저 심려를 끼칠까 염려스럽습니다. 박사님!!! 박사님은 저보다 박사님의 가족분 들을 위해서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셔야 한다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두실 것을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며
두서없는 안부글을 마칩니다.
박사님 언제나 건강하십시오
2015년 8월 15일 고지석드림
민철은 수석연구원 지석의 편지를 먼저 개봉하여 검사하면서 ' 넌 이래서 나와는 애초에 싸움이 안돼, 감상에 빠진 놈, 구구절절 길게도 썼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애잔하군, 신세타령도 이 정도면 노벨상 감인데 말이야
쯧쯧' 속으로 생각하며 혹시 모를 암호나 숨겨진 의미와 부호를 찾기 위해 몇 번이나 살펴 읽었고 불빛에 비추고 보이지 않는 문자가 있는지에 관해서도 꼼꼼히 살폈다. 독해를 통해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끝까지 확인한뒤 부하를 불러 권박사에게 전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자신의 원룸에 별장 안내자 명진이 보낸 요원들이 다녀간 삼일 후 권박사는 독방에 수감되어 있는 수석 연구원 지석으로 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권박사는 원룸도 비우고 이곳을 곧 떠나야 한다는 것을 예감했다. 간단한 배낭과 등산을 위한 지팡이와 속옷 몇 개와 갈아 입을 옷은 미행을 피해가며 며칠을 두고 재래시장에서 현금으로 구입해 두었다.
카드사용내역은 고스란히 조회될 것이기에 추방과 동시에 원룸을 얻을 당시 현금의 여력을 생각해서 생활자금이란 명목으로 숨겨 뒀던것이다. 은행의 입출내역도 계산 될 것은 뻔했으므로 거래내역은 늘 조심했다.
수석연구원 지석의 암시가 무엇인지 권박사는 잘 알고 있었다. 표면적인 구구절절한 안부를 전하는 것이지만 수석연구원 지석이 언급한 절에 표시된 강조표시, 아무렇게나 보일 수 있는 볼펜 똥의 흔적이 가리키는 신원사는 권박사 자신이 다니던 절이었고 그래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편지를 읽는 순간 단박에 알아 챘으며 수석 연구원 지석이 신원사의 절내에 정답을 적어 넣을 펜을 남겼다는 것을 말이다.
종적을 감추게 된다면 그들 역시 금방 사냥개를 풀어서 추척할 것은 분명했지만 첫 번째의 실패는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권박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주로를 이미 대충 구상해 놓았고 새벽을 노려 잠적 할 것이므로 자신의 자동차 또한 압류를 당했기에 무조건 최대한 범위까지 걷고 운행되는 새벽 첫 버스를 타고 신원사에 도착한다면 반나절은 벌 수 있다는 계산이 서 있었다. 그 전에 먼저 할 일은 집 근처에 있는 중고 전자제품 상회에서 노트북과 배터리를 구비하는 거였다. 새제품 역시 매장 내의 카메라로 인해 발각될 우려가 그 만큼 높아지는 이유에서였다. 마음을 추스린 이후 산책과 간단한 운동은 저녁의 일상이었는데 그러한 동선 또한 이미 권박사를 감시하는 자들에겐 노출 되어 있다면 적절하게 회피하고 따돌리는 계획 역시 필요해 보였다.
코마상태에 빠진 표본R을 U캡슐로 급히 옮긴 별장의 연구진들은 우선 심장박동기를 통해 전류를 흘러 보내고 정지된 심장을 뛰도록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도 별장 안내자 명진은 심각해 보이지 않았는데 상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면 '위험인자 제거' 라고 첨부할 요량이었다. 생체실험에 대한 책임자로서 감수해야 하는무게감은 소시오패스이자 철면피인 자신에게 조차 번거럽고도 위험천만한 행위임에는 분명 했지만 그는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전두엽에서 분비되는 환각제 엔돌핀과 흥분을 촉진 시키는 아드레날린의 희열을 위해서는 부족하고도 부족한 결과였다.
이미 표본실에 갇혀 있는 강원도에서 생포한 이무기로 인해 부하들을 희생해야했던 전철이 있었고 완벽한 안전장치를 하기 위해 투입된 비용과 대가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을 상부에서 파악하는 날에는 자신의 모가지도 간당간 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목자F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정을 무리하게 잡았고 할 수만 있다면 방사능 피폭 실험을 먼저해서 그 결과물을 목자F에게 갖다받친다면 속앓이 하는 것보다는 연구소 운영에 대한 잡음 역시 무마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실험체가 죽는 것도 아주 나쁜 결과는 아니었는데 별장 안내자 명진은 최대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어버리는 광란의 극악한 풍경이라면 윗선에서도 납득할 것이고 자신의 광기 역시 만족시키는게 이득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별장 안내자 명진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표본R에겐 이미 자연치료 회복 능력이 초자연적인 힘으로 갖춰져 있었고 자연의 섭리를 앞선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고 있었다.
" 이렇게 빨리 호전되는 것은 처음 봅니다.
횡격막을 가로질러 걸쳐 혈관을 압박하고 부러졌던 갈비뼈와 찢어진 피막, 내부 장기의 출혈이 어느새 재생이 되고 상처가 흔적도 없이 아물고 있습니다. 이런 회복능력은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하루나 이틀 내로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체내 근육량은 놀라울 만큼 증가수치를 보이고 있고 지방은 몸 전체를 감싸고 체내의 산화물질의 독성을 중화시켜 냅니다. 여타 장기 또한 엄청나게 활성화 되었습니다. 아마도 충격을 받을수록 더욱 강력하게 생존호르몬과 방어물질이 생체를 방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계측기의 바늘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모니터를 보십시오 실장님!!! 부러졌던 정강이의 뼈의 근육량의 벌크는
만화 속의 녹색괴물 헐크를 능가할 정도입니다.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불가능 합니다. 획기적 발견입니다.
표본R의 변화에 고무된 연구진의 탄성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별장 안내자의 심기를 또 다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 다행스러운 일이군, 근데 말야!
당신들은 이 생체실험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
골골거리던 저 평범한 놈에게 슈퍼파워를 주
기 위해 비용과 모든 수단을 동원한게 아니란
말이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듣겠어,
인간이 아닌 괴물을 내 앞에 당장 내 놓으란
말이다. 회복능력을 보자고 이 되먹지 못한
실험을 하는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어 도대체!!! 고압전기에 노출 시키고
그것도 부족하면 방사능 피폭 실험을 강행해
시간은 일주일 뿐이야 알겠어!!!
별장 안내자 명진은 컨트롤 타워에서 마이크
를 집어 던지며 점점 악랄하게 미쳐가고 있었다.
아울러 그는 표본R의 생체실험을 지켜 볼수록 자신의 목덜미를 죄여오는 두려움에 반대로 행동해야만 했고 고압전기마저 표본R이 견뎌낸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야수의 본능을 드러내게 할 기막힌 방법은 역시 가족 들이었다.
새끼에 대한 부성애를 건드린다면 그것은 더할 나이없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고 자신의 눈 앞에서 두번 다시는 볼 수 없는 괴물의 탄생, 그 장관을 생각하며 음흉한 미소와 희열에 빠졌다. 그것이 자신의 종말을 알리는 자충수가 될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채 말이다.
누명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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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D프로젝트'로 만나겠습니다.
기대만땅 입니당.......
ㅋㅋ
미끄덩님에게 준 힌트대로 돌아갈까요?
그건 저조차 모릅니다.
제게 영감이 떠오를 때 까지는요^^
글은 이맛이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