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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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로 연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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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내 녀석이 나타나면, 우리는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것이다. 여자와 합석이 이루어지고 난 뒤, 우리 둘의 분위기는 처음과 다른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화장실에 갖다가 나오면서 앉았던 좌석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짧은 시간에 용감한 선수는 합석한 아가씨를 완전하게 같이 온 일행처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목례를 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친구와 둘이 들어 왔지만, 지금은 친구 녀석의 데이트 자리에 내가 끼인 꼴이 되어 버렸다. 친구 녀석의 위트 있는 말솜씨에 연신 그녀의 웃음이 쏟아졌다. 웃는 그녀의 볼우물과 덧니는 매력적이었다. 그때 카운터로부터 낮은 음성의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석 진주씨! 카운터에 전화 와있습니다.” 그녀가 일어나 목례를 하고는 카운터로 향했다. 친구는 그녀와 통성명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이름이 금이나 은이 아닌 진주라 는걸 알 수가 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이석하자, 친구는 다짜고짜 신사협정을 하자고 제의를 했다. 사람이 무슨 물건도 아닌데 진주는 무조건 자기 것이다. 그러니까 눈독을 들이지 말라고 미리 엄포를 놓았다. 대신 큰 선심을 쓰듯이 뒤에 오는 그녀의 친구가 금덩이라도 쳐다보지 않을 테니, 네가 가져 라고 억지 강요를 했다. 전화를 받은 후,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다가왔다. 자리를 비울 동안 늑대들의 중요한 흥정이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열차 시간이 연착되어 진주의 친구는 이제 동대구역에 도착을 했다고 했다. 그날 처음 윤 혜림을 만났다. 처음 본 인상은 하얀 피부에 오뚝한 콧날, 큰 눈, 큰 키, 이국적인 마스크의 여자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겸손하면서도 오만과 자존심, 고집 같은 게 언뜻언뜻 보이는 여자였다. 친구는 혜림이 나타난 후, 스타는 뒤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투덜댔다. 그날 친구의 가짜 생일 빙자로 인해, 네 명이 향촌동과 동성로를 오갔다. 나는 한 달 치의 과외 수고료를 모두 날려버리는 돈 부역을 했다. 친구와 나는 첫 만남부터 진주와 혜림의 미궁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진주는 대구에서 대학에 재학 중이고, 혜림은 서울에서 재학 중이었다. 주말에는 항상 고향인 대구로 귀향을 했었다. 주말에 4명의 합동 데이트가 자주 이뤄지곤 했다. 만난지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넷이 같이 있을 때는 모두 내숭을 떨었다. 하지만 둘이 있을 때는 자연스레 손목을 잡고 걷는 사이로 발전을 했다. 하늘이 맑고 단풍이 곱게 물들던 가을이었다. 당시 76번 버스를 타고 여자 둘은 자리에 앉고, 남자 둘은 서서 동화사까지 데이트를 하러 갔었다. 곡선도로를 주행할 때 몸의 균형을 잡기위해 다리에 힘을 주고 손잡이에 메달리던 기억이 났다. 단풍이 곱게 물이 들어 있었다. 낙엽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곡선의 묘미를 보며, 풋내 나는 인생을 논하기도 했다. 4명이 단체로 데이트를 할 때는 약속을 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코스가 나누어 졌다. 처녀총각의 데이트 장소는 꼭 사람의 눈에서 벗어난 외진 곳을 선호했다. 단풍나무 아래 바위에 손수건을 깔고 흘러가는 개울물을 내려다보며, 인생과 미래를 이야기했다. 개울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가고, 그녀의 홍조 띤 볼에도 단풍이 곱게 들어 있었다. 단풍나무 가지를 꺾어 그녀의 등을 살며시 당겨 귀 밑에 꽂았다. 두 눈을 쳐다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까맣게 보였다. “예쁘게 보여요?” “아주 예쁜데?” “뭐가 예쁘게 보여요? 단풍이 예쁘게 보여요?” “아니, 혜림이가 예쁘게 보여. 단풍은 액세서리이고 이곳의 자연은 혜림을 위한 배경이지.......” 미사여구를 잔뜩 섞어 칭찬을 했다. “입술에 침을 바르고 거짓말을 하세요.” 고른 치아를 들어내고 웃는 모습이 예쁘고 포근하게 보였다. 두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두 눈을 한참 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손을 놓고 허리를 살짝 당겼다. 얼굴이 가까워져 오고 눈과 눈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왔다. 강렬한 자성에 끌려 눈을 감았다. 입술을 찾았다. 혜림은 어깨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입술은 떨리면서도 부드럽고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달콤한 사탕이었다. 쟈스민의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그녀의 두 손은 나의 목에 매달려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입술을 솜사탕처럼 부드러웠다. 입속에 온기가 있는 말랑한 젤리가 들어왔다. 목이 마른 사슴이 갈증을 해결 하려는 듯 둘이는 본능적인 흡인을 하고 있었다. 입술을 떼면서 그녀의 귓가에 더운 숨을 내쉬었다. 이성에게 난생 처음 고백을 했다. “혜림아, 사랑해.” 눈을 감은 채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정신없이 다시 그 행위에 몰두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상태 속에 있었다. 한참 뒤 우리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녀는 내 눈길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겸연쩍어하면서 그녀는 내 얼굴을 한번 처다 보더니 웃고 있었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나의 목을 당겼다. 핸드백에서 수가 놓인 하얀 손수건을 꺼내 내 입술 주위를 닦아주었다. 손수건은 붉은 색으로 얼룩이 졌다. 내 입술을 정리해주고는 작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운 한 떨기 장미꽃이었다. 데이트를 하는 동안 내가 처음 반말을 했을 때 “왜? 반말을 하세요?” 톡 쏘며 처다 보던 얼굴모습은 저 다소곳한 자세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친구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날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동화사에서 사랑고백과 첫 키스의 추억이 아직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지나간 모든 시간들이 역류하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혜림과의 지난 추억의 편린들이 소용돌이 속에서 마구 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오늘 낮에 잉어를 걸어 파이팅 하던 모습을 억지로 생각하였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이런 삶은 어떨까요




글/정용철




뜨거운 사랑은 아니라도
아내가 끓이고 있는 된장찌개
냄새를 좋아하고 간혹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아름답게 들리는 삶은 어 떨까요.

간혹 다투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마주 앉아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함께 있는 자체를 감사하는 삶은 어떨까요.

날마다 날마다는 아니지만 생일날 한 번,
속옷을 내놓으면 마냥 기뻐하여
다음 생일때까지는 선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어떨까요.

이사 갈 것 같지는 않지만
간혹'우리 시골집으로 이사갈까'하면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꿈꿔 보는 삶은 어떨까요.

복권이 당첨되어 형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아끼고 모아 작은 오디오라도 장만하여
그 소리에 일 년 동안 감탄하는 삶은 어떨까요.

종일 햇볕이 드는 건 아니지만
한낮에 잠시라도 햇볕이 들면 '아! 햇볕이 좋다'하며
창문을 열고 이부자리 말리며 행복해 하는 삶은 어떨까요.

전화 통화를 다 듣는건 아니지만,
옆에 있다 간간이 들리는 말을 듣고
누군지를 물어보고,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함께 기뻐하고,같이 걱정하는 삶은 어떨까요.

먼 나라 찾아가는 여행은 아니지만
귤 네개, 커피 두 잔, 물 한 병 배낭에 넣고
가까운 산에라도 올랐다 내려오면서
'욕심 버리고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 보는 삶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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