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일주일 된 조행기입니다.
어디에 올릴까 망설이다 추방이 좀 썰렁허기도 하고
그나마 좀 오래 읽힐 것 같아 여기에 올립니다.
지난 주에 진도로 출조하였습니다.
2020년 첫 출조, 봄 시즌의 호황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지만
정작 현지에 도착하니 연일 태풍급 바람에 앉을 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바람이 타지 않는 곳, 붕어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이곳 저곳 헤메다
한의수로(북치수로) 상류의 바람이 덜 타는 수초지대에 앉게 되었습니다.
폭발적 입질은 아니었지만 7치부터 턱걸이까지 따박따박 입질을 해주어
악조건에서도 나름 만족하며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동네 노인 한 분이 다가와 조황을 묻더니
내 자리에서 하류쪽으로 20여 미터 떨어진 맹탕에 앉습니다.
입질이 뜸할 때 어르신 쪽을 살펴보니 뒤꽂이도 없이 낡은 낚싯대 3대를 고사포 형태로 펼쳐 놓았고
의자도 없이 라면박스를 깔고 쭈그리고 앉아서 낚시를 하시는데 그 라면박스마저도 너덜너덜합니다.
그러다 입질이 없자 해가 중천에 있는데도 철수하십니다.
다음 날 상황도 첫날과 비슷하였는데
두 번째 만남이라 좀 편해지셨는지 어르신이 며칠 전 조과를 자랑하십니다.
자신의 팔뚝을 가르키며 며칠 전에 이 자리에서 "이 만한 붕어를 여덟 마리나 낚았어"라고 하시며
평생 그렇게 큰 붕어(35cm라고 하십니다.)는 처음이라고 하십니다.
아마 산란을 위해 본류권에서 상류 수초지대로 이동하던 대물 붕어 무리를 만나신 것 같습니다.
결국 둘째 날도 7치급 2마리로 마감하고 철수하십니다.
그 다음 날도 어르신은 제 자리에 들러서 조황을 물어보고 전날과 같은 자리에 앉으십니다.
입질도 뜸하고 해서 준비해 간 바나나, 삶은 계란, 사과 등 간식을 나누어 드렸더니
처음에는 사양하시더니 출출하셨는지 못 이기는 체 받아 드십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 놓으십니다.
어르신은 수로 바로 앞에 있는 북치리라는 마을에 사시며 올해 77세인데 부인과는 4년 전에 사별하셨답니다.
딱히 소일거리가 없어 매일 이 수로에서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하십니다.
자녀는 3남 1녀인데 객지에 사는 큰아들은 이름만 대만 다 아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낚시를 너무 좋아하여 주말마다 낚시를 한다고 하십니다.
큰 아들이 갈치 낚시를 가자고 했는데 어르신이 사양했다고 하시면서
채비를 회수하시는데 이 때 처음으로 어르신의 채비를 보았습니다.
낡은 낚싯대와 찌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도 요즘 보기 드문 조개봉돌을 쓰시고
바늘은 족히 망상어 12호 정도는 되어보이는 큰 바늘 2개를 가지바늘로 쓰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땅바닥에 깔고 앉은 종이박스의 귀퉁이를 손으로 대충 찢더니
그걸로 조개봉돌을 감싸고 치아로 깨물어 채비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깔고 앉은 종이박스가 너덜너덜하게 된 것이
모두 어르신이 찢어 입으로 가져가셔서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장갑도 없이 세월에 찌든 어르신의 나무껍질 같은 손까지 눈에 들어와 가슴이 먹먹하여
그 뒤로는 어르신이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데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집에 버리기 아까워 놀고 있는 장비도 있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아드님이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낚시를 아주 즐긴다는 어르신의 큰 아드님~
혹시 이 글 보시면 고향 가는 길에 아버님 낚시 장비 한 번 살펴보시고
최소한의 장비와 소품만이라도 챙겨드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기에 글을 남깁니다.
재미 없는 조행기 마칩니다.
글쓴이님과 어르신의 건강과 평온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