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응? 한번만, 응?"
한창 월드컵의 열기가 온 국토를 뜨겁게 들었다가 놓은 직후,
난 주방일로 바쁜 아내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다시피하고 있었다.
부부 동반 낚시.
아니, 그거 한번 가자는데....이리도 내가 애걸을 해야하나.....
사실....처음부터 와이프가 낚시를 싫어한 것은 아니다.
따지고보면...그 모든 원인은 내가 제공했다는 것이 한 90% 맞는 말일 것이다.
발렌타인데이...결혼기념일, 뭐 이런거 잊은지 오래고...
(한번은 식당에서 밥먹고 나오다가 집어 든 사탕 2개를 발렌타인데이때
선물이라고는 내놓고 낚시터로 줄행랑 친 적도 있었지....)
주말마다 코빼기도 안보이다가 빨래더미, 설거지거리만 마구 제공하고...
가끔은 비린내 잔뜩 풍기는 목욕탕을 만들어놔 질겁하게 하고...
다음에 또 쓴다고 닫아놨던 뚜껑이 부실했던지
집안에 뻘건 지렁이가 기어다녀 혼이 나갈 뻔한 와이프가
비명을 지르며 피신한 적도 2번이나 있었지...
돈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타다가는 낚시장비를 떡 하니 사오면 사왔지
그 흔한 꽃 한송이 사들고 온 적 없고....
심할 땐 집안 행사가 있는 날에도 낚시를 가서는 거짓말을 하다가
새까맣게 탄 얼굴 때문에 들통이나 머쓱해진 일도 비일비재였으니....
어느 순간인가 와이프는 낚시가 원수로 보였으리라....쩝.
한번, 와이프와 행복했던 예전의 동반낚시 기억을 되살려 보면....
대학 3학년때가 아마 처음일게다.
그때 대청댐으로 여럿이 교수님과 몰려가서 옆자리에서 비단잉어를 걸고
선물로 교수님 어항에 넣으시라고 드렸던 일을 시작으로,
졸업 후 연애질을 하면서...
아산방조제로 가서 어설픈 3000원짜리 대낚으로 망둥이잡이하고 회쳐 먹고,
인천에서 배타고 들어간 장봉도에서 원투릴 낚으로 망둥이를 수없이 잡고,
갯바위에서 바늘을 집게로 물고 나오는 돌게잡이도 해보았지....
그 뿐이랴.
신혼 때는 강화도에서는 하루 낮 낚시에 붕애들 100마리는 잡았던 것 같고,
경치 좋은 저수지에서 와이프가 준비한 형형색색의 도시락을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해가며 맛있게 먹던 기억도 난다.
서해안의 선도, 남해의 보길도에서는 동그랗게 배를 부풀리며 나오는
복어 치어에 웃음꽃이 활짝 피기도 했는데.....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슬슬 혼자 다니는 횟수가 늘어날 때만 해도 이리 될 줄은 몰랐는데,
와이프는 극도로 낚시를 혐오(?)하더니 이젠 아무리 감언이설로 꼬셔도
함께 갈 생각을 안하고 콧방귀나 뀐다.
아마 혹자는 차라리 홀가분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실 지 모르지만,
이것이 장시간의 플랜(?)을 가지고 생각해 보니....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첫째,
나의 취미생활을 이해 못하니....출조때마다 거는 태클이 만만치 않다.
비용보조는 커녕...주말시간 버린다고 안 흘겨보면 다행....
둘째,
하루 이틀 같이 살 처지도 아니고...싫으나 좋으나 인생의 동반자인데,
매번 시간이 비는 주말마다 너따로 나따로 지내게 되니 이게 평생지기인가....하는,
서로에 대한 친목감이 야금야금 결여되는 것이 그 이유이고,
세째,
가만 보면 둘이 서로 낚시를 다니면, 식사, 커피등의 간식거리준비 및
운전교대, 주중에 출조에 대한 화제거리, 출조비용 보조, 노후까지 보장된 부부간의
금술 급상승효과 등등....장점이 단점보다 훨 많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와이프가 낚시를 좋아하면....
매주 출조는 물론 틈새낚시까지도 가능해지리라.캬캬
아뭏든....이런 저런 연유로 인하여
난 그날도 와이프를 환자(?)로 만들려는 설레발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캬~ 밤낚시....당신 그건 안해봤지?
까만 밤하늘엔 별이 총총.... 또 수면위에도 별이 총총....
나중엔 내가 우주에서 유영을 하는 듯한 착각에 얼마나 행복한 지....
거, 왜 무중력상태있잖아, 내가 공중부양하는 기분이라니까!"
"........................."
"아, 그럴 때 어디선가 날아드는 반딧불....
푸르스름한 그 빛을 보노라면 마치 최면술에 걸린 듯
복잡한 세상사가 다 사라지고 말더라구....."
"........................."
아, 이쯤했으면 좀 눈이라도 마주치며 듣는 척이라도 해라.
"맑은 공기,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거기에 지저귀는 산새소리....
어느새 밝아오는 여명에 수면 한가득 물안개가 피어 오르면....
카~~ 아마 안 본 사람들은 이걸 말로 얘기하면 못믿을텐데...."
".........................."
"여보, 응? 우리 조용한 산 속에서 간만에 일상을 좀 털어버리고
이런저런...얘기도 하고 오자, 응?"
".......음................"
왠일인가, 돌부처 같던 마누라가 반응을 보이다니...
난 더 열성적으로 와이프에게 구라를 풀기 시작하였다.
"아, 거기에 무료할만 하면 마치 물속에서 유성이 솟아오르듯
찌불이 황홀스럽게 올라오는데...그 때의 챔질하는 그 전율감이란...."
"나, 가긴 가도...낚시는 안할거야!"
"응?"
"따라는 가도...그냥 경치만 보다 온다구!"
"....응? 그래, 그래, 그것만 해도 좋지~"
드디어....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던가.
뭐 낚시대를 손에 안쥐면 어떠랴.
수년간 낚시의 낚자에도 경기를 일으키던 와이프가 마침내 동반낚시의
첫 행보를 이렇게 시작하는데....
까짓거....가서 분위기 좀 잡고 밤에 좀 심심해지면 제까짓게 설마
낚시대 한번 안잡겠어? 손 맛 좀 다시 보면...옛날 생각 나겠지. ㅎㅎㅎ
아뭏든 나는 평상시보다 한 10배는 더 출조지선정과 부식, 기타 편의용품에 엄청 신경을 쓰고...
드디어 함께 아산쪽의 한 저수지로 부푼 가슴을 안고 출발하였다.
차창으로 보이는 녹색과, 맑은 공기....
와이프는 간만의 외출에 기분이 좋아보이는 듯 했고....
난 역시 가는 차안에서도 낚시예찬론을 침튀기며 풀고 있었다.
아무래도 와이프가 처음 하는 밤낚시이기에....
노지는 힘들거 같아 애써 예약한 깔끔한 좌대에 오르려 배에 짐을 싣는데...?
"어라? 여보~ 웬 가방이 이리 무거워?"
"나도 뭐 좀 준비했어....."
흐.....이것봐라.....싫다고 하더니 그래도 이 남편을 위해
뭔가 특별식이라도 준비한 건가....귀여운 와이프같으니!
호젓한 좌대.
바로 앞 수면은 그림같은 수초대가 형성되어 있고....날도 맑고.....
모든 여건이 완벽한 거 같아 이젠 거의90% 성공이 보인다...싶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와이프는
"여보, 나 여기에 의자 펴줘."
"응? 여기여기? 그래 알았어...보는 눈이 있구먼."
ㅋ......오자마자 포인트부터 잡으려는 와이프. 됐어! ㅎㅎㅎ
그 자리에 의자 하나 펴주고....난 조금 떨어진 곳에 부지런히 대를 펴서
수심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음...수심도 좋고~ 새우 달아 던지면 딱이로군....
"여보~ 당신은 몇 칸으로 줄까? 2칸? 2.5칸?"
"............................."
미소를 띄우며...와이프를 바라 본 순간....내 입은 떡~하고 벌어졌으니...
.
.
.
.
.
.
아까 와이프가 자리잡은 자리....파라솔까지 미리 펴준 그 자리엔...
한 박스는 됨직한 만화책을 쌓아 논 와이프가 다소곶이 앉아서는....
벌써 만화책 삼매경에 한없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못하고 서 있는 나를 흘낏 본 와이프....
"난 낚시 안한다고 했잖아?
아~~ 이렇게 공기좋은 그늘밑에서 실컷 만화책을 보는 게 내 소원이었어.
당신 뭐해??? 내 신경 쓰지말고 어서 낚시해~~~"
젠장.........
결국, 난 처절하게 이번 작전의 패배감을 맛보고....
진짜로 낚시대 한번 잡기는 커녕 내가 잡은 붕어도 보지않는 와이프에게
약속대로 때 맞춰 밥상 올리고 커피 심부름만 내내 하다
밤에는 좌대안에서 코고는 와이프소리를 등뒤로 들으며 밤낚시를 해야 했다.
좌대에서 돌아오는 쪽배위........
마지막 남은 한권의 만화책장을 넘기는 와이프에게.....
난 두손 두발 다 들고 항복선언을 외치며
애꿎은 빈 살림망만 말린답시고 툴툴 털어내고 있었다.
(그 후로 벌써 10년..... 아직도 여전히 눈치보며 낚시를 다닌답니다 ㅠ..ㅠ
제가 세상에서 젤로 부러운 건 재벌도 국회의원도 아니고
항상 다정히 부부동반하는 회원님들입니다. 그런 날이 올려나~ㅋ )
항복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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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쉬.. 평소에 잘해야되겠네요,. ^^
만화책 좋지요 ㅎㅎ
재미나게 잘 보고 갑니다...
한참 웃었습니다..ㅎ
낚시를 취미로써 젊을때는
주말만되면 그렇게 갈려고 했든게 어젓께 엿는데
이제는 낚시대를 딱으면서 추억을 즐긴답니다,,
철수할때 서글픔이 싫어지기 시작했어요,,ㅎㅎ
저는 따라온다고 해도 혼자 가는데.....
울 마눌은 낚시터는 개똥밭이라 하고 무조건
외면 합니다
낚시 가는건 내 기억으론 수십년 동안 한번도 반대 한적이 없네요 *
이쁜 딸을 잘 설득하는게 좋은 방법일것 같은데....ㅎㅎ
딸을 낚시계로 끌어들이면 아마도.....
먼저 올린 처갓집 한가할때 도전 오케이?
그때는 사랑에 눈멀때라 낚시도 곧잘 따라하지요
애 하나 낳으면 그것도 끝나지만요 ㅎㅎ
아주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
절대 동감합니다
동의를 얻지 못한 낚시는 늘 마음만 불편하죠
잘 하실겁니다
벌써 내공이 탄탄하신걸요
올까? 안올까?
이벤트 한번 할까요 ㅡ
나는 온다에 걸겠습니다
좀 세월이 흐르고나면 예전에 낚시 해본 경험이 있기때문에 자연스럽게 물가에 따라 나서지 싶은데요.?^^*
그렇게 동네 친구들과 부인데들이 동네앞 갯방구에 메가리 고등어 낚으로 가자고해도 안가던 마나님이...
세월이 흐르고나니 물가에 따라 오더만요.
지금은 손맛도 알고해서 바닷가에도 따라 자주 갑니다.
지금은 손주녀석들 바람에 조금 뜸하지만은.ㅎㅎ
잘읽고 잘보고 갑니다
이것 저것 막 시켜 먹었어야 하는데...
그래야 만화책 안읽고 낚시대를 잡지요
율포리선배님!~~
주제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도 70되신 노조사님과
낚시방 파라솔에 앉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했는데
욕도 썩어 가면 하시는 얘기에 아직 정열이 넘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나이를 얘기했더니만 "좋을때네!~~"하시더군요...
애들 키운다고 쩐에 쩔어 삽니다만
낚시로 인하여 행복을 느끼며 삽니다.
평생 숙제를 안고 살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