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콜을 받고 일어났다.
그녀가 핸드백을 챙겨 먼저 사우나로 내려갔다.
대충 룸 정리를 마치고 샤워와 세면을 했다.
공식일정들을 유보한 그녀와 같이 관광을 하고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10시에 호텔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면바지와 회색 바탕에 녹색 줄이 가로 쳐진 티셔츠를 입고, 창이 있는 파랑색 모자를 씌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반짝이는 은색벤츠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 곁에는 꽃을 주던 남자가 기다리다가 문을 열어주고는 앞좌석에 올랐다.
혜림은 연두색바지와 흰 셔츠에 물방울무늬의 스카프를 두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응, 먹었어.”
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꽃을 전해 주던 남자는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와사꾸사 관음사로 가자고 기사에게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시시각각 틀려진다더니, 어제의 모습과 오늘의 분위기는 색다른 모습이었다.
오늘은 청순한 소녀 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동 중에도 몇 차례의 전화가 걸려왔다.
혜림은 나와의 대화 이외는 모두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통화의 내용은 다음 일정에 대한 지시와 의논 같았다.
일정에 따라 코디네이터에게는 의상의 색상 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둘만을 내려주었다.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팔짱을 끼고 좌우를 구경을 하면서 서서히 걸었다.
도로 양쪽 모두는 기념품 가게로 들어차 있었다.
각종 붉은 글씨와 그림의 모양이 다른 부적 같은 게 상품화되어 견본을 걸어놓고 가격표시가 되어 있었다.
산문을 지나 5층탑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맨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아베크족의 남자에게 셔터를 부탁했다.
탑을 배경으로 내 가슴에 안긴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혜림은 탱큐를 연발했다.
본당 앞에는 무사상이 있고 무사의 목에는 용이 걸려있었다.
628년 어부형제가 그물로 건져 올린 황금관음상을 모시기 위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관음사 본당의 가파른 지붕이 특히 아름다웠다.
대웅전을 배경으로 하여 몇 차례 사진을 더 찍었다.
대형향로를 구경하고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은한 차향과 그녀의 미소가 있어서 좋았다.
혜림은 얼굴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제 너무 무례하게 내 욕심만 보여드려 미안해요.”
“아니야. 서로간의 솔직한 표현이 부담을 덜 수도 있지.”
“저와 있는 게 많은 부담을 느끼세요?”
“부담보다는 지금 꿈속에 있는 것 같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사모님에게도 신경 쓰이지 않게 할 겁니다.
아이들 둘은 원 속에 포함된 핵입니다. 원은 핵을 보호하기 위해 감싸고 회전을 합니다.
저는 원의 그다음 원의 역할을 튀어나지 않게, 숨은 자리에서 당신과 같은 궤도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라 아직 어리고, 대학 진학과 졸업을 한 후에는 혜림의 입장과 아버지의 입장도 이해 할 수가 있을 만큼 사고의 폭이 커질 거야.”
아이들의 미국유학 문제도 제기를 하였지만 역시 아이들이 선택할 몫으로 돌렸다.
무거운 대화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세월을 피하는 어떤 묘안이 있어? 비법전수를 좀 해주지.”
그녀는 금방 굳어있던 표정을 바꾸며,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정말 제가 그렇게 젊어 보이세요? 자꾸 농담을 하지 마세요.”
“아니야 정말이야. 나는 여기가 일본의 동경이 아니고, 강원도 양구로 착각을 하고 있어.”
둘이서 일어나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는 히비아 공원에서 데이트를 했다.
언제 영구귀국 하느냐는 질문에 쓸쓸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 뿌리를 내려 정착은 힘들며, 언젠가의 최종 기착지는 한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결국 세계 속에 살다가 연어의 회귀처럼 최후에는 모국에 닻을 내리고자 하는 것 같았다.
잡지를 통해 인식한 군수산업 관련은 분쟁지역의 무기 수출임을 알았다.
인간의 광기와 욕심으로 벌어진 전쟁에 파괴와 살육을 위한 도구를 매매하는 사업이었다.
그 사업으로 번 돈을 청소년 교육에 투자하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전쟁이 있고, 전쟁이나 분쟁도 인간이 하지만 방지는 결국 인간의 몫입니다. 청소년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를 염두에 두고 미리 바른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인류애를 함양시키고, 인종을 넘어 바른 교육을 시켜야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파괴에서 번 돈을 교육에 재투자합니다. 전쟁에 따른 이산의 아픔과 후유증을 아버지를 통해 평생을 지켜봐 왔어요.”
윤 혜림이 들려주던 잔잔한 목소리의 이야기가 귓전을 울렸다.
내일 오전 중에 스텝들과 이란으로 향한다고 했다.
히비아 공원의 숲 속 벤치에서 키스를 하면서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경산 중앙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입대하던 날처럼
“당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늘 건강 챙기고, 귀국하거나 생각이 나면 언제든지 메일을 줘. 늘 생각을 하고 있을 게”
수십 년 만에 만난 첫사랑의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하루 동안 데이트를 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어떤 약속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 아쉬운 이별을 했다.
아내는 두 달 만에 일본으로 다시 온다고 했지만 역시 아이들 학교 때문에 올수가 없었다.
일본에서의 연수교육도 끝이 났고 무사히 귀국을 했다.
귀국 후 혜림과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아이들에게 혜림은 캠코더를 선물했다.
가족들에게는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라고 둘러댔다.
귀국 후 막내 남동생의 결혼 문제로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다른 생각을 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동성로 연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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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장정 . .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언젠가 저의 눈이 아픈 와중에 출조한 조행기의 댓글에서 빠른 쾌유를 빈다는 고마운 마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이지만 과거에는 국민학교로 불렀지요.
경산장정, 청도 장정.......
그게 모두 지난 일 이지만, 회상하면 아름다울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늘 편안하신 나날이 되시길 빕니다.
입질!기다림님!
안녕 하세요. 잘지내고 계시지요?
"동성로 연가" 시리즈가 벌써 20회가 되었네요.
저는 처음부터 읽어보질 못하여 무어라 말씀을 올리기가 죄송할 따름이네요.
님의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실거죠! ^^
늘 보이지 않은곳에서 묵묵히 그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님이야 말로
진정한 자연인 이십니다. 늘 행복한 나날 되십시요.
그간 편안하신지요?
의성권 화보조행은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화보조행기를 통해 님의 오프라인활동을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게을러 추천만 클릭하고 빠져 나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