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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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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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의 오설지로 향합니다. 비온 뒤라 바람은 상큼하기만 합니다. 벌써 아카시아가 활짝 피었군요. 연두빛 싱그런 잎새에 취 할 것 같습니다. 스므 해의 저빛깔은 격정이었고,서른 해의 저 빛깔은 포근 하더니만 불혹, 지금은 그저 무덤덤 합니다. 오늘은 붕어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옛 영광을 떠올리며 그 저 바람 한 번 쐬고 물구경이나 하고 오자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아무리 친한 친구나 혹은 부부 사이 일지라도 독특한 자기만의 정신 세계를 가지고 살아 가나 봅니다. 저 또한 예외일 수는 없나 봅니다. 아침밥 먹고 그저 낚시 가방 달랑 메고 쫓아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제 신변에 무슨 커다란 사건이 일어 난 것은 아닙니다. 매일 권태롭고 한가한 일상생활입니다. 제법 세끼 밥은 먹는구나 라고 핀잔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세끼 밥과 상관없이 우리 정신은 저잣거리와는 달리 늘 목이 마른가 봅니다. 현풍에서 내려 신기지 맞은 편 구지 가는 길 오른 쪽에 조그만 소류지를 지납니다. 관에서 치수를 위해선지 바닥을 박박 긁어 놨습니다. 수초대는 거의 전멸인 것 같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문명의 양면성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는게 자연의 법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한 분 조사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설리 입구에 들어 섭니다. "까마귀 오" 에 "혀 설" 이더군요. 유심히 보았더니 마을이 꼭 그렇게 생긴 듯도 합니다. 입구에 오설 유료 낚시터가 있느데, 오설지와는 많은 사연을 가지고 계실겁니다. 이제 7년 전 옛 영광으로 돌아가 볼까 합니다. 당시에는 마을에서 낚시를 금지 시켰던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개울 다리에 쇠사슬로 봉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출조를 하기도 했습니다 . 잘 아는 조우의 처가가 바로 오설리 였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옛 영광이기도 하지만 계속 할까 합니다. 첫해였던가,그물로 라면 삶고 커피 마시며 엄청 뽑아 먹었던 것 같습니다.또한,저에게 토종과 희나리와 떡붕어의 입질 형태를 가르쳐 준 곳이기도 합니다. 아마 떡붕어는 밑에 유료사장님께서 달창지의 자원을 넣었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는 모르겟으나 한 두해가 흐르고 오설지는 저희들에게는 평범한 출조지가 돼었습니다. 개방이 돼었던 거지요. 그리고 , 그리고 어느날 저녁에는 케미컬 라이트가 155나 밝혀져 있었습니다. 야전에서 저는 아직 그많은 케미를 본 예는 없습니다. 그리고 또 기어코 제 조우중에 한 사람이 산불을 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간접적 원인 제공자이기도 합니다.선산을 몽땅 내어 준 임야소유주에게이 자리를 빌어 사죄를 빕니다. 어느핸가는 같은 업 동료와 짝짝이 낚시외도를 한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무일은 없었거니와 새파랗던 삼십대 초반의 일입니다. 아마 고급 낚싯대 서너대 값은 탕진 했던 걸로 기억 합니다. 민양인지,박양인지 잘 살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또 있습니다. 3년전인가 또 오늘 아침같이 마음이 허해 우연히 오설지로 향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또 한번의 폐허를 목격했습니다. 월척급 이상 떡붕어들이 못가로 하얗게 떼죽음을 당했더군요.여러 설이 난무 했지만 아마 무슨 전염병이 돌았던 걸로 결론 내리겠습니다. 최상류 수양버들 포인트입니다. 오 이런 ,고사목을 지나 거의 삭정이가 다 돼어 있습니다. 자생 수양목이 고사할수 있는 환경이 어느정도가 돼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건너 편 아름드리 버드나무도 물 속으로 머리를 쳐박은지 오래 됀듯 합니다. 물 빛도 그 옛날 한여름의 물빛보다도 더 못한 것 같습니다. 평소에 장마철을 보내다 보면 부유물에서 지렁이통 ,떡밥 봉지 못지 않게 농업용 쓰레기도 만만찮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왠지 농사꾼인 울 아부지 어매를 도매금으로 넘기지 싶지는 않습니다만,이제 오설지 옛 영광은 추억속의 사진이 돼어 가는 듯 합니다. 죄인 됀 기분으로 귀가길에, 저수지 휴식년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아웃 싸이도님 님의 글에 참으로 공감이 갑니다 .
우리 후손에게 붕어가 무엇인지 어류독감으로 가르치게 될날이 올까 두렵군요..
우리 붕어를 사랑하는 낚시인의 한사람으로 당신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님의 깊은 뜻을 많은 낚시인들이 알아서 스스로 쓰되오 깨저만 운동에 적극 동참
할것을 권유합니다.
님의 낚시 인생에 화이팅을 외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옛추억이 아스러이 스쳐지나가는 일 순간이네요...
저도 옛날 낚시다니지 않을때 논뚜렁에 불내고 토낀적이 있는데.....

붕어광님 반갑습니다. 좀 막연합니다만,대립과 반목이 없는 발전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칼과 낚시와 수초에 대해서 한마디 했다가 어느가면 쓴 조사님에게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저의 경솔을 인정 하면서 슬며시 마무리 돼긴 했지만, 문제가 해결 됀 것이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세기상 아무리 무이념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옳고 그름이 불분명한 시대이기는 하지만, 님같은 포인트 불변의 법칙을 존중하는 조사님들이 다수 계시리라는 짐작하에 조금은 힘이 납니다.
참이슬님 반갑습니다. 여기서도 뵈니 쑥스럽네요. 얼굴 붉힌 모습 보여줘서 지송합니다. 번출 때 뵙겠습니다.
오설지...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확실한것도 있구요
정치망(초망이 아니구요) 여러번 쳤습니다..누군지는 다들 아시겠죠..
밑에 유료 사장님 바꼈다던데 아닌가요
오설지! 대구에서 거리도 적당하고 물색도 참 이뻤었는데.....
4년쯤 전으로 기억이 되는데요.
하루저녁에 목줄을 3번이나 터트린 아린추억을 가진 못이기도 하고요 .
님의 말씀마따나 3년쯤전에 다시 들리니까 엄청나게 많은 떡붕어들이
못 가장자리에서 집단 폐사 되었더군요.
저도 원인이 무었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튼 그때 저와 저희 조우회 회장님이 죽은 고기들을 모아서
매장시켜 준 것만해도 200여수는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거의가 월척급이상)
그리고 그이후에는 그못을 찿지 않았는데......
님의 글을 보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때보다도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 낚시꾼들은 한번더 자신을 되돌아보며,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어떤 환경을 물려줄 것인가는 순전히 저희들의
몫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차일드북님.또 3년 후 면 오설지 같은 사례가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님의 말씀 깊이 명심하며 붕어와 공존 할 수 있는 낚시 환경을 위해 저 자신부터 변화 해야겟다는 다짐을 합니다.
저수지 휴식년제 그거 정말로 필요한 때입니다.
물도 되살아나고 붕대물도 버글 거리고 쓰레기 없고..
그렇게....
3년이나 한5년 놔두었다가 첫해에 대담그모 우예될랑고..
....ㅋㅋㅋ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 거리는기 처자 젖가슴 만지는 기분이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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