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서 오그라드는 이 아침을
발기차게 시작하시라고 시 한 수 올립니다
굴비 / 오탁번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가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월님들 모두 웃으면서 시작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굴비-오탁번(아침을 발기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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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면서도 슬픔이 묻어납니다
이렇게 읽으니 또 다른 감흥이 있네요
현진건님의 "운수좋은날"이 떠오름미더 ^^
4번 남았네.....@@
음란 마귀로 변해가시는 월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