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에는 우리가 있지. 살아있는 것과 이미 죽은 것, 그 모든 것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탄생에 무슨 큰 필연적 의미가 있는 것처럼 과장하기를 즐기는데, 우리가 보면 그 거, 다 사기야. 비밀을 말해줄까? 허탈하겠지만 그거, 다 우연일 뿐 이야. 당신이 만들어진 게 무슨 거창한 계획에 의한 선택 같지? 역사적 필연성의 결과물은 어때? 아니면, 은행나무가 꿈꾼 천년사랑의 결실은? 큭큭, 인간들 말이야, 참 웃기고 자빠지셨어. 사랑이었든 아니었든, 두 우연의 교접이 당신이라는 하나의 우연을 만들었을 뿐이야. 물론 당신의 동의 없이. 정말 감사하거나 너무 억울하게는 생각 마. 다 들 그래. 당신들 조상의 조상의 조상도 그랬어. 본인 허락 없이 태어나버렸지만, 살아야지 어떡해. 상속받은 본능과 선배들의 처세를 학습하며 그렇게 사는 거야. 만만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지옥 같은 세상은 아니야. 포기하고 타협하고 자위하면 그런대 로 살아지거든. 첫 문장을 다시 읽어 줘.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싶으 니까. 세상 모든 것에는 우리가 있어. 살아있는 것과 이미 죽은 것, 그 모든 것에. 그래, 난 그림자야. 그의 그림자. 그가 태어나면서 나도 생겨났어. 그 사람처럼 교접 의 결과물은 아니지만, 나는 그와 함께 살아가는 존 재야. 난 그와 오십 년을 넘게 지냈어. 잠시도, 한 순간도 그와 난 헤어지지 않았어. 그의 아버지보다, 그의 아내보다, 그의 두 딸보다 더 긴 시간을 나는 그와 동거했어. 그가 죽더라도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지. 그가 가루가루 부서져 먼지가 되더라도 나는 허공을 떠돌 며 그를 추억하겠지. 그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나는 그 를 잘 알아. 어쩌면 그 자신보다도 더. 그의 절망과 그의 희망, 그의 사랑과 그의 배신까지 난 다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의 그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그를 읽을 수가 없어. 그는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오늘은 세수도 하지 않았어. 지저분해 죽겠어, 정말. 눈치를 챈 사람이 있을 진 모르겠는데, 요즘의 그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아. 얼마 전의 '제발 내게 어 쩌고'라는 글에 속으면 안 돼. 그는 아주 가끔 글을 쓰는데, 다 쓴 후에는 그냥 지워버려. 난 그를 이해 하기가 참 힘이 들어. 한 때는, 난 그가 정말 좋았어. 언제나 끓는 그의 피 가 나를 흥분시켰고, 늘 깨지면서도 덤비는 그의 깡 다구가 내 어깨에 힘을 실었어. 난, 내 동료 앞에서 언제나 자랑스러웠지. 그런데, 그는 지금 뭘 하는 걸 까? 끓어 넘치던 그의 피는 선지처럼 싸늘하게 식었 고, 그의 깡다구는 새우깡보다 더 쉽게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아. 그가 희미해졌어. 그런대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였는데, 그래서 나도 좀 더 또렷했었는데, 이젠 그도 타협하는 걸까? 혹, 그가 늙어버린 건 아닐 까? 아아, 생각하기도 싫어! 그러면 나도 늙은 거니까. 그는 편집증이 있는데,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데, 어떤 사람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 다지만 그는 아닌데, 한 가지에 올인해버리는데, 그래 서 그는 못하는 게 더 많지만 잘하는 건 아마추어 수 준을 넘는데, 당구가 그렇고 포커가 그렇고 인테리어 디자인이 그렇고 사랑이 그랬는데... 그에게 지겹게 끌려다녔는데, 녹색 테이블의 공을 노려보던 그의 눈빛과 스페이드 에이스를 그려내던 그의 계산과 투시도에 대한 그의 공간감각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아! 그의 사랑을 잊을 수 없는데, 아니아 니 그 많던 그림자와의 교감을 잊지 못하는데, 그가 사랑을 할 때면 나도 사랑을 했는데, 그가 경계를 넘 으면 나도 따라 넘었는데, 그런데, 그것들은 다 어디 로 사라졌을까? 나는 그를 믿어. 그래서 나는 그를 기다리기로 했어. 그가 다시 일어서는 날, 나는 그에게 내 정체에 대 해 말할 거야. 너의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내가 바 로 양심이라고. 양심은 머리나 가슴 어디쯤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기 그림자 속에 있다는 비밀을 그 에게 말해줄 거야. 내가 바로 너의 역사라고. 너의 기록이라고. 지금도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ㅡ 그의 그림자.
무제 (無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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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에는 우리가 있지. 살아있는 것과 이미 죽은 것, 그 모든 것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탄생에 무슨 큰 필연적 의미가 있는 것처럼 과장하기를 즐기는데, 우리가 보면 그 거, 다 사기야. 비밀을 말해줄까? 허탈하겠지만 그거, 다 우연일 뿐 이야. 당신이 만들어진 게 무슨 거창한 계획에 의한 선택 같지? 역사적 필연성의 결과물은 어때? 아니면, 은행나무가 꿈꾼 천년사랑의 결실은? 큭큭, 인간들 말이야, 참 웃기고 자빠지셨어. 사랑이었든 아니었든, 두 우연의 교접이 당신이라는 하나의 우연을 만들었을 뿐이야. 물론 당신의 동의 없이. 정말 감사하거나 너무 억울하게는 생각 마. 다 들 그래. 당신들 조상의 조상의 조상도 그랬어. 본인 허락 없이 태어나버렸지만, 살아야지 어떡해. 상속받은 본능과 선배들의 처세를 학습하며 그렇게 사는 거야. 만만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지옥 같은 세상은 아니야. 포기하고 타협하고 자위하면 그런대 로 살아지거든. 첫 문장을 다시 읽어 줘.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싶으 니까. 세상 모든 것에는 우리가 있어. 살아있는 것과 이미 죽은 것, 그 모든 것에. 그래, 난 그림자야. 그의 그림자. 그가 태어나면서 나도 생겨났어. 그 사람처럼 교접 의 결과물은 아니지만, 나는 그와 함께 살아가는 존 재야. 난 그와 오십 년을 넘게 지냈어. 잠시도, 한 순간도 그와 난 헤어지지 않았어. 그의 아버지보다, 그의 아내보다, 그의 두 딸보다 더 긴 시간을 나는 그와 동거했어. 그가 죽더라도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지. 그가 가루가루 부서져 먼지가 되더라도 나는 허공을 떠돌 며 그를 추억하겠지. 그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나는 그 를 잘 알아. 어쩌면 그 자신보다도 더. 그의 절망과 그의 희망, 그의 사랑과 그의 배신까지 난 다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의 그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그를 읽을 수가 없어. 그는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오늘은 세수도 하지 않았어. 지저분해 죽겠어, 정말. 눈치를 챈 사람이 있을 진 모르겠는데, 요즘의 그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아. 얼마 전의 '제발 내게 어 쩌고'라는 글에 속으면 안 돼. 그는 아주 가끔 글을 쓰는데, 다 쓴 후에는 그냥 지워버려. 난 그를 이해 하기가 참 힘이 들어. 한 때는, 난 그가 정말 좋았어. 언제나 끓는 그의 피 가 나를 흥분시켰고, 늘 깨지면서도 덤비는 그의 깡 다구가 내 어깨에 힘을 실었어. 난, 내 동료 앞에서 언제나 자랑스러웠지. 그런데, 그는 지금 뭘 하는 걸 까? 끓어 넘치던 그의 피는 선지처럼 싸늘하게 식었 고, 그의 깡다구는 새우깡보다 더 쉽게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아. 그가 희미해졌어. 그런대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였는데, 그래서 나도 좀 더 또렷했었는데, 이젠 그도 타협하는 걸까? 혹, 그가 늙어버린 건 아닐 까? 아아, 생각하기도 싫어! 그러면 나도 늙은 거니까. 그는 편집증이 있는데,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데, 어떤 사람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 다지만 그는 아닌데, 한 가지에 올인해버리는데, 그래 서 그는 못하는 게 더 많지만 잘하는 건 아마추어 수 준을 넘는데, 당구가 그렇고 포커가 그렇고 인테리어 디자인이 그렇고 사랑이 그랬는데... 그에게 지겹게 끌려다녔는데, 녹색 테이블의 공을 노려보던 그의 눈빛과 스페이드 에이스를 그려내던 그의 계산과 투시도에 대한 그의 공간감각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아! 그의 사랑을 잊을 수 없는데, 아니아 니 그 많던 그림자와의 교감을 잊지 못하는데, 그가 사랑을 할 때면 나도 사랑을 했는데, 그가 경계를 넘 으면 나도 따라 넘었는데, 그런데, 그것들은 다 어디 로 사라졌을까? 나는 그를 믿어. 그래서 나는 그를 기다리기로 했어. 그가 다시 일어서는 날, 나는 그에게 내 정체에 대 해 말할 거야. 너의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내가 바 로 양심이라고. 양심은 머리나 가슴 어디쯤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기 그림자 속에 있다는 비밀을 그 에게 말해줄 거야. 내가 바로 너의 역사라고. 너의 기록이라고. 지금도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ㅡ 그의 그림자.
어느새 옥동자군이 태어난거지 그 아기 동자가
7살전 까지는 그렇게 귀엽더니 어느새 내어깨에
무게로 눌러 버리더만
나도 그랬듯이 누구나 가지는 운명인것을
이젠 실눈 떠고 지긋이 바라보고 즐길것 같구만
심각하게 사는기 전혀 도움이 안되더라는
생각에 허허 웃음짓고 살겁니다
피터님 반가워요
해골빡이야....^^;
정체를 드러내랏~~~~
휴우~~~~~-_-;
엄두가 안나서요=_==_=
쿨럭! ㅜ.ㅠ"
쪼오금 알듯도<======ㅇ
저도 깨깟히 씻고 그를 보렴미더.
인생은 시지프스의 노동도,
벰파이어의 영생도 아님을~~~~
머리에 생각나고
눈에 아른거리고
코에 그 스킨냄새가....
기억하는 것을요
이글은 3년 걸리겠습니다
가뿐한 맘으로 오십시오
어렵게 사시네요
쉽게 살자고요
그냥 순리대로
계획없어 태어났지만
계획대로 살면되고
남을판단하기전에 나를 한번더 돌아보고
쫒겨다니며 살기보단 당당하게 살고
잘못했으면 먼저 사과하면되고
다시반복하지 않으면 되죠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죽은사람입니다.
죽는그날까지 사랑하며 살죠
피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림자가 동네PT병입니꺼...
굴러다니는게 차이는것도아니고...
자꾸 그림자..그림자 카십니꺼~~~~~~~
웰컴^^♡
길다.
3초 넘기시겠네.
부끄럽습니다...
3초는 아닌것 같은데....ㅎㅎㅎ
반갑습니다. 오시자마자 일케 큰 숙제를 ??
찬바람이 불기전 오실거라 뉘가 그러더니 .......
흰머리 두개 늘었슴미더.
행정소송준비함미더...―,.―
감사합니다, 맑은 마음으로.
" 무지(無知)" 인 줄 알았습니다.
귀향을 환영 합니다.
3초에서 30초로 연마는 잘 하셨심니꺼 흐흐흐
지우고 싶어 파문을 일으켰지.
그러나 지울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건
한참을 지나 머리가 희끗해질 때였지.
바람을 내 안에 가두고 싶은 글을 적으려 했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제자리였었지요.
이제 한 걸음 띨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