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님들 안녕 하세요..
이거 월척 한번 들어 오니까 정말 정말 끊을수가 없네요..
어제도 울 대빵 눈치 보면서 월척에서 눈팅했는데, 오늘도 역쉬나 똑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네요.
어제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출조에 대한 기대감에 두근두근 두근 ^^:
이번주 단비 소식에 예전 군대에서 있었던 소소한 경험이 생각나 끌적 거려 봅니다.
삼실에서 딱히 할 일도 없고..
( 회사 시스템에서 왠만한 사이트는 다 막혀 있는데 월척은 일과중에도 들어 올수 있네요.. 아마 울 회사 높으신 양반들 중에 낚시를 좋아 하는 분이 계시거나, 월척 회원이거나.. ㅎㅎㅎ)
저는 2002 ~ 2004 년에 강원도 고성에서 현역 근무했는데요. (22사단 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어깨 넘어 배운 낚시가 유일한 취미이자 친구가 되어 버렸고 틈만 나면 저수지로 강으로 물을 찾아 다니던 저에게 있어서 낚시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이 중독되어 버렸습니다.
어렸을때는 낚시라는 행위 자체를 좋아 했다기 보다, 시골아이들의 특성상 고기를 잡는다는 “천렵”이 좋았던 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 합니다. 투망 족대 어항 작살등등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모든 행위 자체를 좋아 했으니까요.
그때는 붕어가 아니라, 메기 빠가사리, 쏘가리 꺽지 등이 최고 인기 어종이었으며, 여름철 대못을 휘어 만든 못으로 개구리를 꿰어 잡은 가물치가 또래 아이의 자랑거리 였습니다. ^^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1학년때쯤 투망을 던지기 시작하였으니... 천렵은 아이들의 제1의 놀이거리 였습니다.
당시에는 피라미와 똑같은 취급을 받고 지천으로 널려 있었던 쉬리와, 잡으면 맛 없다고 다시 놓아 주던 기름챙이(종개류)
보쌈으로 잡으면 몇시간만에 한 양동이 가득잡던 퉁가리 인지 퉁사리인지..
미끌미끌 거려서 매운탕 끓이면 기름뜬다고 돌려보내주던 배퉁어.(돌고기)
동네 계곡에서 애벌레 끼우면 5분에 한마리씩 올라오던 산메기 (미유기) 등등
이런 우리의 토종 민물고기가
인터넷에서 마리에 얼마씩 주고 판매 하는걸 보면 정말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걸 새삼 스레 느낍니다.
이야기를 전환하여 군대에 갈때에도 2년 넘는 시간동안 갇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괴로움 보다는 그 시간동안 대를 놓고 있어야 하는는 사실이 저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시 머리를 쓴 것이 외박을 이용한 낚시 였습니다.
군인에게 있어서 정말 황금과도 같은 외박을 이용해서 근처 음식점에 낚시대를 맡겨 놓고 토요일에 나와서 낚싯대를 들고 밤낚시를 즐긴 후에 일요일 복귀하는 것을 당시 부대원들은 이해 못할 짓으로 보곤 했는데, 저는 그 외박을 이용한 짬 낚시가 1달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당시 위수지역 및 교통편으로 멀리까지 가지는 못하였고 고성 근처의 이름 모를 둠벙과 동해로 흘러 드는 하천에서 낚시를 즐겼습니다.
처음 100일 휴가 때 낚싯대를 들고 복귀하는 저를 보면서 부모님은 힘든 군대생활을 버티게 해준 낚시라는 취미에 대해서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대신 “찌의 과학” 따위의 책을 읽는 모습을 몇 번 들 킨 후로 낚시를 가르쳐 주신 아버지 조차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었거든요 ^^;
군생활 당시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 이렇게 연타석으로 엄청난 피해를 받았는데
2002년에 루사 때가 최고였던것 같습니다.
당시 저희 부대에 정보병의 말에 의하면 일일 강수량이 640MM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년에 올 전체 비 양의 절반이 하룻밤에 내렸으니 말 다했죠.
밤에 전 부대원 군장 싸고 비상대기 하면서 막사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마대자루에 흙을 채워서 간이 물 막이 공사를 했습니다.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밖에서 1분을 채 서있지 못할 정도였는데...
거짓말 좀 보태면 비를 맞는 건지 주사를 맞는 건지.. 빗방울에 아픈 건 아마 평생에 그때 뿐일 거라 생각합니다.
판초우의가 비와 바람에 거지꼴이 되고, 아예 그것도 거추장 스러워 팬티만 입고 삽질하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네요.
밤새 내린 비에 공현진 초소인가?? 그곳은 내무실이 계곡물에 쓸려 내려가서 한동안 다른 내무실에서 같이 생활 하기도 했습니다.
억수 같이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나서 당시 상황을 몇가지 그려 보면…
연병장 한가운데 없던 개울이 생겼고 그 개울에 미꾸라지 가재가 살고 있었고,
배수로는 흙으로 막혀서 어디가 배수로인지 알수 없는 상태이며,
상반기 진지 구축 공사때 뺑이 쳐서 만들어 놓은 참호들은 무덤같이 봉긋하게 올라와 있고,
낚시를 즐기던 하천은 불어난 계곡물에 강 같이 변해 있었고..
바로 앞에 동해안은 계곡에서 쓸려 내려온 나뭇가지와 쓰래기로 숫제 난장판 계곡과 같았으며..
바다에 살던 조개들은 엄청난 민물에 적응하지 못하여 죽어서 파도에 쓸려와 해안가를 뒤덮고 있었고..
논은 저수지 처럼, 밭은 논처럼….
정말 눈으로 보고 믿기 힘든, 그 어떤 뉴스에서 보던 피해현장보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근 한달동안 피해 복구 한다고 삽질하고 또 삽질하고, 대민복구 나가서 삽질하고 막걸리 얻어 먹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달여 만에 다시 찾은 낚시터는 예전의 낚시터가 아니었습니다.
잘 발달되어 있던 연안 수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연안으로는 큰 돌과 나무들이 몰려 들어 도저히 낚시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부대 복귀 후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중…
비 때문에 유실된 지뢰 제거를 하던 대위 한 분이 지뢰를 밟아 양손이 날라가는 사고가 납니다. 그분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가물가물 하네요. 뉴스 까지 나왔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때 군생활 하시던 분들 중 혹시 기억나시는 분도 계실것이라 생각됩니다.
M14 발목 지뢰가 그렇게 대단한 위력인지 그때 새삼 실감 했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국방일보에만 조그맣게 나오네요.. 김일동 대위님이라고 하네요.)
그 사건 후로 제가 낚시를 하던 해안 근처 둠벙 및 하천은 모조리 접근 금지 구역이 되어 버렸고, 제 외박 낚시를 잘 알던 행정관 및 소대장님은 앞으로 절대 낚시 금지라면서 홀로가는 외박을 금지 시켜 버렸습니다.
그렇게 그 해 낚시는 마무리 되고, 군대에서 흔히 말하는 짬이 차면서, 어느정도 군생활이 편해진저는 외박 낚시 대신에 다른 소일거리를 찾게 되었고, 군대에서의 낚시는 차츰차츰 잊혀져 갔습니다.
그 다음해인 매미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됬고요.
벌써 10년이 넘은 일이네요.. 그렇게 얼마전 여자친구와 제가 생활했던 곳으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강릉을 거쳐 속초로 그리고 고성으로..
알싸한 기분으로 당시의 기억들이 하나씩 스쳐가더군요.
좋은 추억, 힘들었던 기억……첫 휴가, 첫 외박, 첫 훈련, 그리고 군생활의 첫 낚시
그때의 아련한 기억에 잠겨서 가던 차를 멈추고 한동안 저를 힘든 군생활로부터 지켜준 낚시터를 가만히 처다 보았습니다.
사연을 모르는 여자친구는 여기까지 와서 또 낚시 생각하냐면서 저를 타박하고..
이런저런 부연설명과 더불어 당시 루사와 매미때의 스팩타클한 상황까지 리얼하게 묘사해 주고 나니 자기가 먼저 대를 담가 보자고 합니다. ^^
제 인생의 최대어는 지난달 도로 밑 소류지에서 잡은 월척이 아닌 미래의 제 아내라는 확신이 드네요. 항상 고마울 따름이죠.
주제 넘지만 낚시꾼의 행복은 붕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가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
(사실 붕어를 잘 낚지도 못합니다. ㅎㅎ)
월님들.
올해 첫 비가 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비라고 하니 다들 안전출조 하시고
항상 어복 충만 하십시오.
아~~ 월님들께 하나 여쭈어 봅니다. 어복 충만 하라는 말은 예전말인가요? 저는 저수지에서 만나시는 분들께 항상 어복 충만 하시라고 말씀 드리는데.. 요즈음은 안쓰는 말인지 찾아보기 힘들더라고요.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꾸벅 ( . . )
군대에서의 낚시와 태풍 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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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도 한아름 복받으시기를.....
가족이 제일이죠 취미도 마음이 편해야 재미있는것 아니겠습니까?
안출하세요~~
저또한 낚시를 아버지 따라 다니면서
배워서 인지
어려서 낚시 추억이
무척 많아요
잘읽었읍니다
근데 왜 전 외박이라는 것을 나가 본 적이 없네요..
휴가를 너무 나와서 그런가?...ㅋ
항상 가족과의 행복을 기원드려요..
인생 최대어를 낚으셨으니 이제 그 최대어를 가슴에 품고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잘 읽고 흔적남기고 갑니다.
외박은 없었네요
대충 어디어디서 낚시했는지 알겠네요..
공현진,아야진,거진,대진,가진........다 그립고 정다운 추억이 있는곳 입니다..
제가 알고있는곳도 드리대 보셨는지요
봉포호수.유격장옆 저수지
이십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생생하네요
댓글도 반갑네요
즐낙하세요
53연대 1대대..ㅎㅎㅎ
반갑습니다.
공현진초소,..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군요
저랑 군생활 시기가 비슷하신 분같네요. 전 그때 포항에 있었습니다. 정말 비 만이왔었는데요. 비가 너무와서 팬티만 입고 다녔는데 정말 주사기가 온몸을 찌르더군요. 대대 어지간한곳은 다 침수되고 해안가에 조개들 집단폐사하고 난리도 아니였죠 글 읽으니까 옛 생각 나네요.